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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흐동오유 Nov 05. 2018

같은 직급 동료의 50번째 생일을 축하하다

다른 사람 신경쓰지 말고 내가 행복하면 됐지

어느날 갑자기 이메일이 왔다

'David 의 깜짝 생일파티가 있을 예정이니 오후 2시에 David 책상 근처로 모여줘' 

 

 그리고는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따라갔고 그의 책상에는 '50' 이라고 적힌 풍선과 각종 장식들로 꾸며져있었다. 카드 쓰는 것을 사랑하는 영국 사람들 답게 전체 마케팅 실 사람들의 축하 메시지를 담은 생일 카드와, 꽃다발, 초콜렛, 그리고 휴지로 정성스레 포장한 커피 막대기 (설탕 등을 넣고 휘젓는 나무 막대기)를 전달했다. 커피 막대기는 왜 선물 한걸까 궁금하던 차에 모든 사람들이 빵 터졌고, 그는 조심스럽게 서랍 안에서 절반이 썩은 듯 까맣게 변한 나무 막대기를 꺼냈다.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까워 몇 달 째 같은 막대기를 쓰고 있었고, 그것에 놀랐던 주변 동료들이 그 막대기를 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위트있게 새 커피 막대기를 선물한 것이다. 그치만 원래 가지고 있던 커피 막대기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진심으로 새까만 검정색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던지 내 옆 팀 팀장님도 'That's hideous (저건 좀 끔찍하다)' 라고 말하며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아쉽게도 David의 생일 축하 사진을 찍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영국에서는 이렇게 누군가의 생일에 책상 데코를 해주곤 한다  (이 사진 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 전체 마케팅 실 사람들의 얼굴을 다 익히지 못했던 터라, 자리에 돌아와서 방금 생일을 축하했던 동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팀 소속인지를 확인해보고자 전체 조직도를 열어보았다. 그리고는 방금 50번째 생일을 축하한 동료가 나와 같은 직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응? 백발이 무성하고 누가봐도 Director 급은 되어 보였는데? 그리고 방금 무려 50번째 생일을 축하했잖아? 인사팀에 찍혀서 승진을 못한건가?'

더 자세히 조직도를 살펴보니 애가 고등학생이라던 옆 팀 아줌마도 나와 같은 직급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에전에 다른 회사에서 팀장급으로 일하던 어떤 엔지니어가 친구네 팀에 일반 사원급으로 입사 했다는 이야기도 기억이 났다. 이 David 라는 동료와 나중에 사내 마니또 프로그램 비슷한 것에서 짝이 되어 커피를 마시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는데,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더 높은 직급에 대한 열망은 없는지 묻고 말았다. 그는 비슷한 나이인 여자친구도(부인이 아니라 여자친구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같은 회사의 같은 직급이며, 큰 스트레스 없이 가끔 여행을 가고 둘이 먹고 살 정도의 돈만 벌어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는 사회생활을 할 때 나이가 아주 중요하다. 대학 시절 방황하다 늦은 나이에 입사를 한 사람이나, 빠른 생인 사람들에게 "너 때문에 족보가 꼬였어" 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고,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보다 높은 직급에 있으면 아주 불편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어떤 새로운 집단에 가면 나이 확인 후 서열 정리가 우선이고,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도 자연스럽게 나이 많은 사람이 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다. 

 

내가 한국에서 다녔던 회사의 연구소에는 본격적으로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는 과장 진급을 거부하는, 일명 '만년 대리'를 선택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때는 그들의 선택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곧 '루저의 삶' 혹은 '도태되는 삶'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것이 회사에서는 모두가 더 높은 직급을 향해 달려 가는 것을 ‘기본 전제’로 삼았고, 누군가 진급 누락을 할 경우 수치스러운 일로 여기곤 했다. 심지어 분 단위로 근태에 빡빡하게 굴었던 회사가, 진급에 누락한 사람들이 승진 발표 당일 미리 월차를 내거나, 공고가 뜨자마자 말 없이 집에 가버리는 것도 용인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누군가 여러 차례 진급하지 못할 경우, 인사팀에 밉보여 영원히 해당 직급에 머물러야 한다는 괴담 수준의 소문이 돌기도 했다. 

 

물론 영국에도 진급을 위해 성과 관리를 하거나 일 욕심을 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특히나 영국에서는 내가 어필하지 않으면 승진도, 연봉 상승도 아무도 챙겨주지 않기 때문에, 승진을 원한다면 끊임 없이 자신의 실적을 상사에게 어필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의미 있게 생각 하는 것은 바로 그렇게 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이 주어진다는 점이다. David처럼 stress-less한 삶을 선택 한다던지소셜미디어를 총괄하다가 갑자기 수영 시간 강사로 전향한 Charlie, 모두가 사랑하는 CSR담당 매니저였다가 어느 날 자신의 가구 공방을 열기로 결정한 Amy를 모두 진심으로 응원 해주고 축복해 주었듯이 말이다(적어도 겉으로는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할지라도). 물론 능력이 아주 출중해서 어디로 이직을 해도, 혹은 공백을 가졌다가 다시 와도 늘 더 나은 포지션에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솔직히 모두가 그렇게 살 필요도, 살 수도 없지 않은가. 늘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인생의 능사인양 남들의 눈치를 보거나, 혹은 반대로 더디게 가는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무언가 흠이 있을거야' 라고 생각하는 대신에 어떠한 삶의 방법을 선택할 것인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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