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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빠흐동오유 Oct 22. 2018

출근 첫 날, 나는 혼밥을 했다

영국 회사의 점심 문화

한국 사람들은 밥을 함께 먹는 것을 매우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안부를 물어도 밥과 관련된 질문인 경우가 많고, 심지어 한 지붕 아래 사는 사람들을 ‘식구’, 즉 밥 먹는 입 개수를 기준으로 센다. 이러한 문화는 회사에서도 이어진다. 주간 메뉴를 알려주는 이메일이 안 오면 마음이 불안하고, 점심 시간을 침범하여 회의가 진행되면 말 길게 하는 사람은 역적이 된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1시간의 점심시간을 극대화하여 사용하기 위해 커피가 빨리 나오는 커피숍 파악은 물론이고, 시간에 맞게 짜여진 산책 코스 등도 당연히 정해져 있게 마련이다. 또한 누가 누구와 밥을 먹는지를 가지고 회사 내 정치 흐름의 판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내가 한국에서 다녔던 회사는 대기업 중에서도 굉장히 독특한 점심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그러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기 보다는 총무팀에서 자꾸만 새로운 시도들을 했(지만 별로였)다. 가장 충격적인 점심 시간 Policy 중 하나는 정해져 있는 12시 부터 1시까지의 점심시간을 단 1분도 일찍 시작하지 못하도록 하는 총무팀 및 인사팀의 여러가지 묘책(?)이었다. 해당 건물에 근무하는 사람 대비 엘리베이터 수가 매우 부족해서 점심시간에 잘못 걸리면 엘리베이터를 타는데만 10분이 소요 되는 터라, 소중한 점심시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2-3분정도 일찍 엘리베이터를 타러 내려가곤 했다. 어느날 그것을 막겠다고 총무팀에서 내세운 방법은, 12시 이전에 나오는 사람 이름 적기, 식당으로 가는 통로에 카메라 설치 하여 해당 인원 파악 후 벌점 주기 같은 것들이었다. 화룡점정 포인트는 그렇게 파악된 점심시간 규정 위반자들의 벌점을 합산하여 가장 큰 벌점을 가진 팀의 팀장이 점심시간 동안 계도위원 (협조전에 이렇게 적혀 있어 나중에 뜻을 찾아보니 ‘줄 세우는 사람’ 이었다)으로 점심시간 봉사를 해야 했다. 그 때도 코미디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코미디같은 일이다. (우리 실 내에 팀 불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팀의 팀장님이 자주 계도위원으로 선발 되었던 것을 보면 총무팀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역할로도 활용 되었던 것 같다). 시대에 역행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점심시간 ‘선도부’ 사건은 심지어 기사에 나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이해가 안가는 것은 바로 ‘임원 식당’ 이다. 자켓과 넥타이까지 갖춰 입은 임원들은 별도의 밀실에서 단가가 다른 점심을 먹었다. 심시어 직원들과 같은 ‘배식’ 방법이 아닌 누군가가 ‘서빙’을 해주는 방식 이었다. 주간 식단표에 임원 식단도 같이 올라왔는데, 그들이 먹는 ‘전복 갈비찜’ 과 같은 메뉴를 보면서 일종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심지어 그들은 칼같은 12시 점심시간 규제에도 유유히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먼저 내려가서 식사를 해도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해 들은 바로는 내가 있던 회사의 최초의 여자 임원으로 외국계 기업에서 모셔온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이 직원들과 함께 ‘일반 식당’에서 밥을 먹자 그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 다른 임원들이 한소리를 해 결국 임원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이처럼 ‘회사 점심’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은 사람으로서, 영국 회사 첫 출근 날 ‘점심 혼밥’한 것은 꽤나 충격이었다. 내 매니저는 건물 꼭대기에 있는 식당을 보여주더니 내가 언제든 먹고 싶을 때 가서 점심을 사먹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식당에서 굉장히 맛없는 인도 커리를 먹고 내려 오니 본인은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회사 책상에 앉아 먹고 있었다. 출근 첫날부터 혼밥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들의 점심 문화에 대해 알게 되자 내가 왜 출근 첫날 혼밥을 해야 했는지 알게 되었다. 

첫 출근 혼밥에 괜히 뻘쭘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업무하는 척

영국의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 점심을 싸오거나, 슈퍼에서 간단한 샌드위치, 크리슾스(감자칩을 영국에서는 이렇게 부른다)를 사와 업무 중 비는 시간에 먹는다. 점심을 싸오는 이유는 대부분 회사 식당에서, 혹은 주변에서 파는 음식들이 맛/퀄리티 대비 비싸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공짜로 나누어줘도 욕 먹을만한 기본 햄/치즈 혹은 계란 마요 같은 아주 심플한 구성의  식빵 샌드위치 1개가 슈퍼에서 5천원 정도는 하고, 특별할 것 없는 작은 샐러드도 6-7천원은 기본이다. 한국처럼 반찬 3가지 이상에 국, 밥 구성이라면 이 돈이 아깝지 않겠지만, 내가 만들어도 이것 보다는 맛있을 것 같은 음식이라면 싸오는 편이 훨씬 낫다. 그리고 영국은 한국보다 장바구니 물가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사먹는 것과 만들어 오는 것의 비용 차이는 시간이 쌓일수록 꽤 크다. 


또한 한국의 회사들이 대부분 12시경 점심을 먹는데 반해 영국 사람들은 회의 일정이나 본인 스케줄에 따라 12시~3시 사이에 자유롭게 먹는다. 따라서 회사 식당도 이에 맞추어 긴 시간동안 운영 된다. 이처럼 자유로운 식사가 가능한 이유는 점심을 본인의 데스크에서 혼자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향이 있는 음식을 싸오거나 흘릴 위험이 있는 음식을 싸온 경우 공공 휴게 공간에서 먹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카레와 같은 향이 진동하는 음식도 그냥 본인 책상에서 먹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점심 시간 1시간은 ‘unpaid’ 였는데, 한국에서는 어짜피 일찍 갈 수 없으니 한 시간을 꽉 채워 사용하는 반면, 이곳 사람들은 오후에 일이 있는 경우 일하면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일찍 퇴근 하기도 했다. ‘unpaid’이기 때문에 이렇게 당당하게 나의 점심시간을 사용할 수도 있다니! 친한 동료들에게 이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1분 이른 점심도 허용하지 않던 이전 회사’에 대해 이야기 하자, 그녀들은 ‘지구상에 그런 회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시간이 지나자 나도 동화되어 계란 마요 샌드위치를 즐겨 먹는 경지에 이르렀고, ‘크리슾스는 감자로 만들었기 때문에 야채에 속하고, 건강한 음식이다’라는 기적의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 나의 궁금증. 


이들은 왜 이렇게 라이트한 점심을 먹는데도 산만큼 배가 나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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