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학교장의 모습을 희망한다
'교무실무사 없으면 학교가 돌아가지 않지만 교장 없어도 학교는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웃고 넘길 농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학교장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단면을 풍자했다는 점에서 마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학교장은 학교라는 사회의 대표이자 막강한 권력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따라서 학교장이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모습도 많이 변할 수 있다. 유능하고 혁신적인 학교장이 부임한 학교는 유의미한 변화와 성과를 내는 반면, 무사안일주의와 복지부동(伏地不動)한 태도의 학교장이 부임하면 잘 운영되던 학교도 갑자기 활기가 사라지고, 망가지기도 한다.
"행정업무나 민원처리에 책임질 만한 정도로는 결코 교장이 개입하지 않고, 악성 민원처리든, 그로 인한 법적 다툼이든, 모든 실무는 담당 교사에게 미루고 자신은 법적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아야 훈장 받고 정년퇴직하거나 교육청의 요직 (과장, 국장, 지역교육청의 교육장)으로 갈 수 있다는 인식이 교장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 한마디로 학교장은 책임을 지거나 실무를 담당하는 자리가 아니라 궂은일, 책임질 일은 교사에게 떠밀고 (1) 영광 받고, (2) 아무리 혁신적이고 학생에게 도움 될 만한 일이라 할지라도, 가급적 새로운 일은 벌이지 않고 조용히 정년퇴직 또는 요직 승진을 목표로 하는 자리이다."(안준길, 교육언론 창 인터뷰, 2023. 8. 24.)
불행하게도 우리는 훌륭한 교장 선생님보다는 무사안일의 교장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교감 100명이 교장 1명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학교장의 권한이 막강하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교사들이 교직생활의 목표로 학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궂은일을 도맡고 인사권자인 학교장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애쓴다. 이런 구조와 문화가 고착화되면 당연하게도 학교장을 하고자 하는 이유가 그 역할보다는 지위와 권한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학교장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과 열정을 쏟아부은 나머지 학교장이 되고 나면 번아웃이 된 것처럼 무사안일주의와 복지부동의 유혹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학교장이 되기 위한 과정은 지극히 어렵다. 15~20년 이상의 경력, 근무성적 평정, 연수 성적, 교육성적 그리고 각종 공통 및 선택 가산점(도서·벽지 근무점수 등)을 합산하여 일정 순위 안에 들어 교감자격 연수를 받고, 이후 교감으로 몇 년 이상 근무를 해야 교장자격연수를 받고, 비로소 교장으로 임용된다. 이러한 제도가 승진형 교장임용제도다. 승진형 교장제도 외에 공모형 교장 임용제도가 있긴 하지만 임용가능한 자리가 매우 적다. 승진형 교장 임용제도를 통한 교장 승진을 위해 노력 중인 교사들 입장에서는 현재의 교장 임용제도를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장 임용제도의 변경이 쉽지 않다.
승진형 교장 임용제도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이런 승진형 임용 제도는 부정적 후과가 크다. 왜냐하면 교사의 주된 역할은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임에도 교장 승진을 위해서는 승진 점수를 따기 위한 각종 행정업무를 맡아야 하고, 점수가 주어지는 연수나 사업들도 참여해야 한다. 또 인사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비상식적 갑질과 비합리적 업무 지시도 참고 따라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정작 교사 자신의 주된 역할인 수업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문화에 익숙한 교사가 학교장이 되면 학생 수업을 혁신하고 학생 생활지도를 개선하는 것 등 학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는 교육부와 교육청의 지침에 따른 행정 중심의 학교운영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런 유혹을 뿌리치고 열정적으로 학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학교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모습으로 더 많이 그려지는 학교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자신이 학교장이 되면 해보고 싶었던 포부와 계획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학교운영 제도와 교장 임용 방식은 현실의 학교장이 어쩔 수 없이 따라가고 선택할 수밖에 만드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학교 교육과 학교장의 변화를 이끌려면 먼저 학교운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학생 자치권 보장과 교육 복지 강화 등 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 변화와 담임제도의 개선과 행정인력 충원 등을 통한 교사의 역할 변화, 학교운영위원회 등 학교 자치 권한의 강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학교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여전히 학교장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장의 역할 변화가 필요하다. 교장임용방식의 변화만으로는 바뀌지 않을 수도 있다. 먼저 학교장의 역할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에 대해 애리조나 주립대 안준길 교수의 인터뷰(2023. 8. 교육언론창)는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교육현실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학교장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해 충분히 참고하고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옮겨본다.
https://www.educhang.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8
안준길 교수는 “미국 교장” 하면 무전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 한국 교장의 이미지는 잘 차려진 양복, 사무실에서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모습인데, 미국 교장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티셔츠, 청바지, 무전기를 들고 있는, 그래서 뭔가 앉아서 결재를 받거나 다른 사람을 지시하는 사람이기보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이미지가 강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학교장은 학생출결과 학부모 민원, 학교폭력 사안 처리 등을 직접 처리한다고 한다. 교사가 학부모와 직접 만나는 경우도 드물며, 학교 폭력 사건이나 각종 소송도 교육청이 당사자가 되어 처리한다고 한다. 학교장은 '모셔야 할 분'이 아니라 가장 큰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학생과 교사를 보호하며 학교의 행정실무와 민원을 직접 감당하는 '최전선의 일꾼'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학교장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왔던 학교장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그리고 이런 모습으로 학교장의 역할이 변화하기를 희망한다. 물론 미국의 교장이 이런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학교장을 지원하는 다양한 행정 인력과 제도적, 재정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학교와는 시스템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학교장의 변화 이전에 학교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학교의 역할, 교사의 역할 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기반으로 행정업무에 투입될 교직원을 더 확충하고, 교원 1인당 학생수 감소 등 학교 제도의 개혁과 재정적, 행정적 지원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무런 제도적, 물적 뒷받침 없이 학교장의 선의에만 기대어 추구하는 변화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학생과 학부모, 교사, 학교장의 권한과 책임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하고 이에 따른 각 구성원들의 역할 정립이 필요하다. 과거에 머물지 않고 미래지향적 학교 교육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각 주체들의 논의와 합의도 필요하다.
학교장 제도 하나만 떼내어 변화시키는 것만으로는 그 제도 변화의 의미조차 퇴색시킬 수 있다. 전반적인 교육혁신의 관점에서 중장기적 교육 개혁 정책을 확정하고 이에 맞춰 학교장 제도 개혁을 병행해야 그 변화가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