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왜 존재하는가?, 구도유이치 [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
담임교사 맡기를 꺼리는 교사들이 늘고 있다. 최근 한 기사에 인용된 2024년 '시도별 초·중·고 담임 중 기간제 교사 현황'에 따르면(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410170069) 2023년 담임교사 23만 5970명 중 3만 6760명(15.6%)이 기간제 교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보다 세부적인 현황을 다룬 다른 기사(https://www.munhwa.com/article/11342779)에 따르면 2022학년도(4월 1일 기준) 전국 중·고교 담임 11만 295명 가운데 기간제 교원 비율은 27.4%(3만 173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비율은 매년 2∼3% 포인트씩 높아지고 있어 2023년에는 30%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기간제 교원이 2만 3000명이 채 안 되는 점을 고려하면 기간제 교원 3명 중 2명이 담임 업무를 맡은 셈이다. 고등학교는 담임교사 5만 5922명 가운데 26.2%(1만 4679명)가 기간제 교원이다. 초등학교의 경우 담임교사가 대부분의 학과 수업을 맡는 특성상 기간제 교원 비율(3.9%)이 중·고교보다 확연히 낮지만, 역시 비율이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담임교사에 대한 기간제 교사의 비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정규 교사들의 기피가 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정규 교사들이 이처럼 담임교사를 기피하는 것은 담임교사의 업무가 가중되고, 학부모 '악성 민원' 등의 노동 강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일부에서는 정규 교사들이 기간제 교사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기피업무를 떠 넘기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그중에서 특히 학생에 대한 지속적 학습지도라는 측면에서 기간이 짧은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교사를 맡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담임교사 기피하는 정규 교사는 더 늘어날 전망이고 이에 따른 학부모들의 불만도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정규 교사들에게 담임을 맡으라고 강제하는 것이 최선인지에 대해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조에 따라 학교규칙으로 학급편제를 하도록 하고, 제36조 5에 따라 학급담당교원을 두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학급단위 운영과 담임교사제 등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필요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학교 운영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분석과 혁신은 최종적으로 학교 안에서의 변화를 이뤄야 하는 것이니까.
이런 고민에 힌트를 줄 책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일본의 학교 혁신 사례를 담은 [학교의 당연함을 버리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사례는 2019년 5월 국내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저자인 일본 공립학교 학교장 구도 유이치는 학교 시스템을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신이 부임한 학교에서 다양한 운영방식 혁신을 통해 학교에서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래서 이 책은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내가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학급과 담임교사제에 대한 저자의 관점과 실제 적용 사례였다.
저자는 학교의 존재 의미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정립하고자 하였다. 저자는 "학교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학교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더 잘 살아가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러려면 아이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는 자질’ 다시 말해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사회가 눈부신 속도로 변화하는 지금이야말로 이 같은 교육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부임했던 고지마치 중학교에서 2018년도부터 학급 담임을 정하지 않고 학년 담당 교사 전원이 해당 학년 전체를 보살피는 ‘전원 담임제’를 도입했다. 기존의 고정담임제는 여러 폐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학급 담임이 반 아이들에 대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과한 책임을 진다는 점에 대해 비판한다. 학급 안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학생과 학부모는 담임 탓으로 돌리기 일쑤이기 때문에 담임교사는 필요 이상으로 아이들에 대해 간섭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공부를 못하면 ‘수업이 안 좋아서’, ‘준비물을 잊고 오면 ‘그런 말 못 들어서’라고 변명하며 담임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또 반대로 일부 교사들은 지나치게 담임 역할에 몰두한 나머지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학급 왕국'을 만들기도 한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저자는 고정 담임제를 폐지하고 전원 담임제를 실시했다.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를 잘 알아차리는 교사, 학부모 대응을 잘하는 교사, ICT 활용에 능한 교사 등 다양한 개성을 살려 해당 학년을 운영하는 방식"이 전원담임제라고 한다. 교사들 각자 잘하는 분야가 따로 있으며 그 장점을 살려야 아이들에게 더 큰 가치를 줄 수 있다고 저자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것을 '팀 의료'식 운영에 비유하면서 병원이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의료전문가들이 협업을 통해 각자의 전문성을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사실 학급 담임제가 실시된 근본 바탕엔 학급 단위 운영이라는 학교 시스템이 있다. 그래서 학급 담임제가 아닌 학년별 전원 담임제의 실시는 학급별 운영에도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최근까지 학급별 운영시 필히 겪게 되는 "일등 반", "꼴찌 반"으로 우열을 가려 학급별 차별을 정당화한다거나 이로 인해 담임교사의 책임을 비정상적으로 강화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저자는 이러한 차별과 학급 담임제에 따른 과도한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전원 담임제라는 개혁을 실시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매끄럽게 정착되진 않았다고 한다. 1학년 4개 학급에 8명의 교사가 배정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8명을 4개 팀으로 나눠 1~2주간 학급을 운영하고 다른 학급으로 옮겨가는 식으로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해당 학급과 가장 잘 맞는 교사가 그 학급을 1개월 이상 맡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전원 담임제가 되어 여러 학급을 함께 살피다 보니 교사들 간 소통은 필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학급별로 담임에게 전가되던 책임이 학년 전체 교사들의 공동 책임으로 되돌려졌다. 추측건대 과거 담임교사 입장에서 짊어지던 부담감은 확실히 줄어들었을 것이다. 다만 공동 책임을 지더라도 앞서 설명한 것처럼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달랐을 것이므로 어떤 경우에는 일부 교사들에게 조금 더 많은 부담이 가중되었을 수도 있다. 이때 이러한 부담을 조정할 학교장과 학년부장의 역할과 책임이 매우 중요했으리라 생각된다.
전원 담임제의 실시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분명하였다. 학급 운영은 모든 교사에게 투명해졌고, 교사들도 학급 단위가 아닌 학년 단위로 학생을 지도하는 관점이 생겼다. 또한 학급별 경쟁과 우열을 부추기는 활동이나, 담임교사의 책임이 사라졌다. 이는 학생들의 학교생활 - 예를 들어 체육대회 때 학급별 대항 경기가 사라지고, 전체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의 변화 - 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교사만의 협조만으로 가능하진 않았을 것이다. 학급 담임제를 요구하는 학부모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저자는 "학부모들이 오너십을 가지고,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취지로 기존에 도입된 "학교운영협의회", 일명 '커뮤니티 스쿨'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학부모나 지역주민이 오너십을 가지고 움직이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성원들은 오너십을 가지고 책임과 리스크를 함께 짊어지는 사람이어야지, 평론가적 의견이나 던지는 제삼자 기관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교장과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나 지역주민들도 오너십을 가지려면 자기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학부모가 학교와 교사에 대해 평가할 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학교 참여 태도와 역할 등에 대해 평가받아야 하며, 스스로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은 우리나라 교육에도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교육 3 주체로 학생, 학부모, 교사를 말해왔다. 그런데 학부모는 학교교육과 관련하여 감시자와 평가자로서 학교 교육에 참여하긴 하지만, 정작 교육 주체로서 학부모 역할에 대한 평가는 받지 않고 있다.
평가는 책임과 동반되어 있다. 그래서 평가가 이뤄진다면 일부 학부모들은 반발할 것이고 또 일부는 학교 참여에 더욱 소극적이게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관점을 세우고 책임과 권리를 동시에 부여받지 못한다면 현재 학교 교육을 둘러싼 학부모와 교사의 갈등은 해법을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적 주장만으로 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듯 교사, 학부모 모두 오너십을 가지고 책임 있는 참여가 이뤄질 때 가능한 것이다.
전원 담임제의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과연 모든 학교에서 제대로 작동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확실하게 떨치지는 못했다. 저자가 실험한 전원담임제가 학교장인 저자가 떠난 이후에도 온전히 정착되어 유지되고 있는지, 또 다른 학교로 전파되었는지 궁금하였다.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해 본 결과 저자가 옮겨 부임하고 있는 요코하마소에이 중고등학교에서 2025년 현재 유일하게 운영 중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결과적으로 학교장의 의지와 리더십이 작동하는 가운데 교사들의 협조 없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개별학교, 개별 주체들의 희생에 의지한 혁신은 한계가 명확하다. 학교를 혁신하는데 전원 담임제의 의미가 더 크다면 교육당국에서 시범학교를 늘리고 좀 더 과감하게 도입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저자는 "학교는 원래 사회의 첨단을 걸어야 하고, 교사는 그 누구보다 시대를 앞장서서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학교가 최첨단이 아니라 가장 늦게 변화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도 별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저자는 혁신이 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다들 법령이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관례'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관례를 당연시하는 문화를 바꾸고, 법령에 근거한 자율적인 학교 운영 시스템을 고민한다면 충분히 변화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생각은 우리나라 교육당국과 학교 교육 주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