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와 돌봄, 호혜와 우정의 공간으로서의 공동체
오늘날 학교가 겪고 있는 갈등과 해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가 교육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교육공동체로 회복된다던가, 교육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던가 하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의 위기 극복을 위해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말이 힘을 얻고 현실에서 실천되기 위해서는 각 교육주체들이 생각하는 공동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상호 공감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모두가 아픈 학교, 공동체로 회복하기]는 이러한 물음에 답한 책이다. 학교 현장에서 교육공동체 회복을 위해 실천해 온 저자들이 공동체의 의미를 탐색하고, 학교가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 가능성을 연구한 결과물을 담고 있다.
"학교가 아니, 모두가 아프다. 그 원인은 어느 한 가지로 귀결되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의 후유증, 현장과 거리가 먼 법령과 지침의 작용, 교사와 학부모, 학생 세대의 상호작용과 변화, 형식주의, 고립주의, 독박주의로 표현되는 부정적 교직문화, 리더십 부재, 우선순위와 과업의 불명확성, 공동체 소멸, 교원의 정치기본권 박탈, 학교자치의 제도와 문화의 취약성 등은 각 저자들이 밝힌 문제이며 원인이다"
이처럼 학교 위기의 원인은 다양한데 반해 학교가 겪고 있는 위기에 대한 대응은 사법적 절차에 치우쳐 있다. 교육의 사법화로 인해 학교 운영은 교육의 논리와 맥락이 아니라 법정의 논리로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학자들과 현장의 전문가들은 교육은 사법적 절차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으며, 공동체적 규범과 절차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학교가 법화 하면 공동체의 규범과 절차는 온데간데없고 수사와 재판, 사법적 절차를 통한 해결이 방책이 된다. 교육의 논리와 맥락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교육적 지식과 절차가 아닌 법정의 논리로 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육적 개입이 불가능한 공간에서 교육은 소멸한다. 학교공동체 구성원들이 신뢰와 합의에 기반한 민주적인 규범과 생활양식을 만들기보다는, 개인 간 권리 충돌과 침해행위의 조치에 주목하는 법령(학교폭력예방법, 아동학대 처벌법, 교원지위법)들이 새로운 규범이 되고 만다. 장다혜 외(2016)는, 현재 학교공동체에서 발생하는 학부모와 학생, 교사 간 갈등 심화가 사법적인 규범 및 절차와는 목적을 달리하는 공동체 규범 및 절차에 대한 몰이해와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우리에게는 사법화에 맞서는 교육공동체의 규범과 절차가 필요하다."
교직의 고립주의 문화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지나며 심화됐다. 이로 인해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독박주의'가 강화되었다. 공후재(2024)는 이에 대한 원인으로 학교 형식주의를 지적하며, 학교자치와 교사의 '자율성' 보장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가 형식화되는 원인으로는 학교 불신에 따른 교육 당국의 공문과 감시를 통한 통제를 예로 든다. 또 이러한 형식주의는 교사들에게 평가를 기피하게 하고 개인주의와 고립주의를 강화시킨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교사 간 협업체계는 약화되고, 각 교육주체들 간 소통은 단절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정유숙(2024)은 "외로움이란 단순히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과 실존의 상태인 동시에 관계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배제된 느낌을 포함한다"라고 말한다. "히틀러의 나치즘이 외로워진 대중의 지지로 만들어진 체제'라는 아렌트(1951)의 말을 인용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며 지지와 돌봄과 호혜와 우정의 공간으로서의 공동체는 단순히 학교 차원의 문제 대응을 넘어 개개인의 생명적 차원과 사회적 안전 차원에서도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신뢰와 소통, 협력에 기반한 네트워크에서 규범을 통해 확보되는 자산인 만큼 학교가 공동체로 존재하게 되면 내릴 수 있는 판단의 여지가 넓어지고, 공동 책임으로 든든한 뒷배가 생기며,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기에 학교가 공동체의 문화로 회복되는 것이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공동체 문화를 회복하고 고립주의와 독박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른 주체와의 의사소통을 통해 시야를 넓혀야 한다. "밀폐된 공간과 범주에서의 편안함은 집단적으로 멍청해지는 시그널이라고도 한다. 교사 전문성 담론이 종종 교사 집단의 확증 편향을 독려하는 필터 버블로 사용되지는 않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정유숙은 말한다. 교사 혼자 오롯이 아이들을 책임질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서용선(2024)은 듀이를 인용하여 "공동체에서 중요한 것은 ‘상식과 소통을 충분히 갖는 일’이다. 학교공동체를 만드는 데 교육 주체들의 풍부한 상식과 충분한 소통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상식’은 공동체가 지닌 ‘공동의 그 무엇’이다. 소통은 공동의 ‘그 무엇을 갖게 되는 과정’이다." 그 가운데 상식은 학교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교육 주체들의 욕망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지만 지성을 모아가면서 ‘공통적인 것’을 최대한 확장하고 경험의 질을 높여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 볼 수 있다. ‘소통’은 이러한 상식을 기반으로 상호작용과 교섭작용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과정인데, 이를 위해서는 교육주체들이 평등하면서도 쉽게 만나고 공동의 활동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교사는 학부모가 갑이고 교사는 을이라고 말한다. 학부모는 교사가 갑이고 학부모는 늘 을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신 속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를 탓하고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하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모두가 아프다. 교사도 아프고 학부모도, 학생도 아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각 주체들이 서로 책임을 묻고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각 주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학생인권, 교권, 학부모 교육권은 충돌하지 않는다. 함께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적 시민권과 학교자치도 함께 인정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체들 간 상호 인정과 신뢰가 있어야 한다.
김성천(2024)은 "진상학부모와 일부 소통이 안 되는 교사를 상정하고 학교를 구성해서는 곤란하다. 신뢰를 전제하고 논의해야 한다. 양극단의 불신 행태를 보이는 1-2%의 존재들은 98% 이상을 차지하는 합리적 교사, 학생, 학부모가 견제해야 한다. 그러한 공동체의 질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공동체의 질서는 현재 상황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다. 법이 먼저냐, 공동체가 먼저냐 따질 필요가 없다. 공동체의 회복 노력이 문화가 될 수 있다면 이를 보완할 입법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서용선(2024)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학교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긴다.
"문화인류학자 하이드(Lewis Hyde)는 공동체의 어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common’은 ‘함께’라는 의미의 ‘com’과 ‘의무를 진다’는 뜻의 ‘munis’ 혹은 ‘munus’에서 온 ‘munia’가 어우러진 말이다. 앞서 데리다가 지적한 대로, ‘함께 의무를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