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 애청자였던 우리 부부는 작년 어느 때부턴가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가수들이 나오지 않고 화제의 인물들의 인사 무대가 되어버린 복가를 통해 더 이상 감성이 충족이 되지 않아서 여기저기 음악 프로를 기웃거리다가 로또싱어에 한창 꽂혔었다.
다양한 고퀄리티 무대들에 넋을 잃고 남편과 물개 박수를 치다가 조장혁님이 부르는 여행스케치의 '옛 친구에게'를 듣게 되었다.
옛날 작은 무대 위에서 함께 노래한
정다웠던 친구를 두고 난 떠나왔어
서로를 위한 길이라 말하며
나만을 위한 길을 떠난 거야
노래를 들으니 12-3년 전 어떤 사정으로 서로 멀어져 버린 고등학교 친구가 떠올랐다. 순간 머릿속에 친구와의 예쁜 추억들이 한가득 비눗방울처럼 퐁- 퐁- 퐁- 터지며 마음이 막 알록달록하더니 울컥하고 친구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하지만, 1분쯤 더 생각하고 나니.... 친구를 애써 다시 찾아 연락을 한다 해도 거기에 투입될 시간, 에너지, 감정, 그리고 이미 너무 다른 세상을 살고 있을 부분에 대한 두려움.
그 무엇보다 그 모든 순서를 잘 풀어냈다 하더라도 내 마음과는 한껏 다를 수 있는 불확실한 결론도... 혹은 타협도..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래, 굳이 지금 다시 만나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게으르고 비겁한 결론이 도출됐다.
20대 그리고 30대까지는 왜 그리 괜찮지 않은 게 많았는지 모른다. 왜 그리 지금의 현상에 안주하지 못하고 더 애써야 할 것 같았는지.
더 좋아져야 할 것 같았고
더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더 쏟아부을 에너지가 남은 것 같았고
더 세상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서
조금만 주저하려 하거나 게으름 피우는 나를 보면 화가 났고, 몰아세웠다.
"아니, 안 괜찮거든!"
"더 만나봐야 하거든."
"더 부딪혀 봐야 알거든."
"더 배워야 하거든!"
인생의 퍼즐 조각 중 단 한 개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더. 더. 더.
젊은은 그렇게 뭐든지 채워나가느라 바쁜가 보다.
마흔이 되었다.
이젠 더 채우고 싶은 것보다 현재 채워져 있는 것을 컨트롤하고 유지하고 가꾸는 것에 몰두한다.
설사 어떤 사람을 놓치고 온 길이 생각이 나도
매우. 무척. 아리게. 그리워도
감정에 지배당하기보다는
현실적인 것들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현재의 상태, “Status Quo"를 지키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마흔이 넘은 우리.
결코 게을러진 게 아니다.
우린 괜찮아진 거다.
괜찮은 게 많아진 거다.
신체가 늙듯이 마음도 늙는다.
그러니 유독 마음에게만 젊은 패기를 강요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열심히 살아온 우리의 청춘과 젊음의 바탕 위에
조금 너그러워진 마흔의 마음을 '괜찮다'해주면
그 마음은 나에게 평안을 줄지도 모른다.
이제 채워 나가야 할 것보다, 비워냄으로 오히려 채워지는 삶의 밸런스를 인정해 주면 어떨지.
오늘도 이렇게 마흔 앓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