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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Mar 12. 2021

과테말라 부잣집 살이

그래도 오레오는 여전히 맛있다

"아빠! 우리 잘 도착했어! 이모네 집이 엄청 좋아. 집에 막 수영장도 있어!"


과테말라에 도착한 다음날 아빠와 통화를 할 땐 시장통 속으로 연결된 공항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런 대저택에서 우리 세 식구가 살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드라마 속 부잣집 주인공이 된 것처럼 들떴다.


"그래... 수영도 배우고 학교도 잘 다니고, 동생 잘 챙기면서 잘 지내야 한다.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한테 꼭 전화해. 아빠가 한국에서 다... 보내줄게."


전화를 끊자,


엄마의 냉랭한 목소리.


"아빠가 한국에서 뭘 어떻게 보내니! 너 혹시라도 철없이 아빠한테 뭐 필요하다고 말하지 마라."


그 말이 슬펐지만, 이해는 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여러 사람에게 한꺼번에 큰 배신을 당하여 옴짝달싹 할 수 없이 코너에 몰린 상태였고, 지나치게 현실적인 가난에 압사당하기 직전이었다. 그 막막한 순간에 이모는 과테말라로 올 것을 제안했고, 아빠를 제외한 우리 세 식구는 그 제안을 덥석 잡아 서울을 탈출해 이곳에 도달했다.


"내가 그걸 몰라?! 내가 언제 부탁한댔냐고!!"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열일곱이던 나는 차갑고 뾰족하게 엄마의 말을 받아쳤다.

.

.

.


과테말라에 온 지 삼일쯤 지났을까.


타고난 성격이 예민한 나는 우리 세 식구가 이 대저택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모는 계속 신경질적이었고, 한국어를 못하는 두 딸들은 우리의 출연에 관심이 없다는 듯 그들의 일상을 지냈으며, 이모의 남편은 늘 술 취한 사람처럼 과장되고 들뜬 목소리와 제스처로 우리를 대했다. 그 각각의 태도는 불협화음처럼 나를 불편하고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엄마의 여동생이고 그 여동생의 남편이고, 또 그 여동생의 딸들이니 모두 나의 가족인데, 나는 그들이 무척 불편했고,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의 초조함과 불편함은 과테말라 살이에 적응하는데 중요한 건 아니다. 기분이야 어떻든 간에, 배는 채워야 하는 거고, 필요한 것들은 사야 했으며,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가늠은 해야 한다. 그래서 불편한 그들과 함께 가장 먼저 간 곳은 근처 대형마트였다.


과테말라든 서울이든 엄마와 누나만 잘 따라다니면 충분했던 11살 남동생은 마트에 가니 신이 났다. 본능처럼 스낵 섹션으로 걸어가서 과자를 이것저것 집어 들었다. 동생이 고른 과자 중 극강으로 달달한 오레오를 카트에 담고, 한국에서 챙겨 오지 못한 몇 가지 생필품을 담았다.



"계산하러 가자."


마트에 들어온 지 20분도 채 안되었고, 체구가 왜소했던 11살 남동생이 다리를 뻗고 앉을 만큼 커다란 카트를 1/4도 채우지 않았는데 엄마는 계산대로 가자고 했다.


내 마음이 잠깐 '어?' 했지만, 나보다 더 불안해 보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황급히 정리됐다.


우리는 아빠 없이 과테말라에 왔고, 남의 집에 살게 되었고, 그 집은 불편한 공기로 가득하고, 그 말은 지금 우리의 상황이 상당히 별로라는 의미이고, 나는 착하고 성숙한 딸이고 싶었다.  


그때, 반대편 섹션에서 리사와 제인, 즉 이모의 두 딸들의 한껏 흥 돋은 목소리가 들렸다.


"We need this."

"oh, I like this."

"So, cute. We gotta buy this."


다섯살부터 발레로 딸들의 몸매 관리를 해주었다는 이모의 말대로 리사와 제인은 늘씬하고 꼿꼿한 자세로 선반에 있는 물건들을 두 개의 카트에 채워 넣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의 가득 찬 카트가 질투 나서 자존심을 날카롭게 세우고 눈을 돌렸어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성숙해도 결국엔 열일곱이었던 나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이모를 한 번, 리사를 한 번 쳐다봤다.


순간, 엄마는 그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조용히 계산대를 향해 카트를 밀었다.


기대라는 것의 치명적인 반대급부는 실망이고, 실망이 도포된 마음은 고운 아기 피부 같아서 살짝만 스쳐도 빨갛게 달아오른다. 마흔쯤 되니 피부는 더 이상 곱지도 연하지도 않아서 설사 기대가 실망이 되어도 달아오르긴커녕 너무 쿨해서 뻔뻔해 보일 정도지만, 열일곱은 함부로 기대가 많은 나이었고, 첫 장보기는 빨간 상처만 남겼다.


대저택 2층 우리 방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옷장의 맨 위 서랍을 열고, 아무렇게나 집어넣어둔 옷들 사이에 오레오를 쑤셔 넣었다.


1층 커다란 부엌에 간식 선반이 따로 있다는 걸 알았지만 거기에 두면 그 과자는 영영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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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오후,


엄마와 이모는 식당에 나가고, 

리사와 제인 그리고 나와 내 동생이 남은 집에서

나는 옷장 서랍 속에 넣어둔 오레오를 꺼내어 동생과 나눠 먹었다.



방문은 꼭 닫아 두고, 

2층 거실에 리사와 제인이 나오지는 않는지 귀를 쫑긋 세운 채.  


왜 그렇게 먹어야 했을까.... 

아직도 그 마음을 다 모르겠다.


서랍 속에서 꺼내 먹은 그 과자는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달달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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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오레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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