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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망별 Dec 28. 2020

나, 과테말라로 이사가



'과테말라'라는 나라를 들었을 때, 

당연히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1998년이었고, 나는 한국과 미국(잠시지만)에만 살아 본 17살이었으니까 ‘과테말라'라는 나라는 당연히 아프리카 어디쯤에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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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과테말라로 가."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도 모두 그랬다.


"뭐? 너 아프리카로 이사 가는거야??"


며칠 후 난 정말 과테말라로 가야 하는 시간을 맞았고, 내 친구들도 나를 과테말라로 보내야 했다.


나는 중학교 3학년 1년을 미국 플로리다에서 살다가 작년에 이 학교에 고등학교 1학년으로 전학을 왔고, 1년 반 사이에 너무나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십대 여자들이 할 수 있는 갖가지 소소한 일탈을 즐겼다. 그 와중에 자연스레 생긴 베프와 헤어지는 것은 마치 전쟁에 용병으로 끌려나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이별처럼 슬퍼서 교문을 나설 때 참고 있던 울음을 왕- 터뜨리며 통곡을 했다.


나만 아는 그 민망한 통곡을 그 교문 앞에 남기고,

나는 엄마와 남동생의 손을 잡고 과테말라에 도착 했다.


다행히(?) 그곳은 아프리카는 아니었고, 중미에 위치한 작고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나라였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본 공항의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는데(너무 오래전이라 내 기억이 조금 엉성할 수는 있겠다) 수화물 찾는 곳에서 짐을 찾아 게이트를 빠져 나오자 곧바로 시장으로 이어졌다. 은유법이라 생각한다면 오해다. 맞은편이 그냥 재래 시장이었다.



그간 내가 경험했던 공항의 모습은 가방을 찾고 커다란 자동문이 열리면,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도착 구역'이 나오고,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반길 수 있는 공간에서 누군가는 애틋한 소리를 치며 달려오고, 주변을 돌아보면 커피숍이나 작은 편의점, 화장실이 보이며, 짐을 끌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반듯하게 잘 닦인 공항도로 위에 택시나 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뿐이었는데....


당시 공항 건물


도착시간이 저녁이라 밖은 어둑어둑했다. 어둠 속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 것은(당시 내 눈에는 우스꽝스러웠던) 과테말라 전통의상을 입은 주민들. 뭔지 모르는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땅에 풀어두고, 이런저런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장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지 주민들이었다. 국사 시간에 배운 60년대 한국의 모습과 유사했다.


그 난리통 속에서 어찌어찌 우리를 마중 나온 사람을 만났고, 그 공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꽤 멋진 검정 SUV를 타고 그 사람의 집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나는 과테말라를 만났고,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른 채 시끄러운 어둠을 헤치고 그럴싸한 커다란 집에 도착해서 말 그대로 멍-한 정신으로 첫날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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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이라고 하길래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일어나 나와 엄마, 그리고 남동생이 머물게 된 그 집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어젯밤 공항의 충격과는 또 다른 의미의 충격을 느꼈다.


일단, 압도적인 집의 크기.


사실 그 때까지(그리고 그 후에도 17년을 더) 내가 기억하는 우리 집은 오직 다주택 빌라의 반지하였다. 다른 유형의 집, 예를들어 아파트라던지, 혹은 다주택 빌라의 지상층에는 살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사는 반지하 집이 딱히 싫거나 불만이진 않았다. 그냥 뭐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 거니까.


그런데 그 날 이후에는 서울에 있는 반지하 집이 상당히 거슬렸던 것 같다.


여하튼, 그 과테말라의 집은 2층짜리 대저택이었는데, 1층에는 호텔에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실내 수영장이 있었고, 수영장은 넓은 거실과 연결이 되며, 거실 한 귀퉁이에는 피아노가 놓여져 있고, 또 어디쯤엔가 아주 커다란 부엌도 있었던 것 같다. 부엌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 이유는 그 집에는 식모들이 여럿 있었고, 부엌은 그들의 일터였기 때문이겠다.


드라마에 나오듯 계단을 따라 오르면 여러 개의 방이 있는 2층이 나온다. 어젯밤 나는 그 2층의 한 방에 짐을 풀었고 잠을 잤다. 2층에도 넓은 거실이 있고, 그 외에도 다른 방들이 더 있었다. 대저택이니 당연히 마당도 있다. 그리고 마당에는 두 마리의 잘생기고 윤기가 나는 독일 셰퍼트도 있다.


압도적이다.


그럼 이제 여기가 누구의 집인지 말할 차례다.

여긴 우리 엄마의 여동생, 즉 나의 이모의 집이다.


이모와 그 가족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이모는 젊어서 이모부와 스페인으로 이민을 갔고, 그곳에서 딸을 둘 낳았으며, 이후에는 과테말라로 와서 이곳에서 가장 큰 쇼핑몰(당신의 상상과는 다른 크기니 너무 기대는 말라)의 푸드코트에서 퓨전 중식집을 운영했다. 이모부도 따로 하는 일은 있었는데, 이후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여기선  패스한다.


나, 엄마, 그리고 나와 6살 차이가 나는 내 남동생.

우리 셋은 그렇게 드라마세트장 같은 그곳에서 낯선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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