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망별 Mar 24. 2021

과테말라 무장강도의 이중생활

부지런한 사람이 강도질도 한다.



옥탑방 부엌 빨래터에서의 손빨래가 익숙해지고, 학교 가는 길 소들의 얼굴도 대충 구분이 되고, 동네 어느 집이 어떤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는지 꽤 상황 파악이 될 즈음 우리는 과테말라에 적응했다고 느꼈다.


어느 한국분이 가져다준 브라운관 티비와 낡았지만 기본기는 충실한 비디오도 생겼고, 교회에서 새 키보드를 사면서 쓸모없게 된 다리 없는 키보드 본체도 우리의 옥탑방 바닥에 자리 잡았다.


그 덕에 열일곱 나는 한국 슈퍼에서 빌려온 한국 음악프로 비디오테이프를 매일 반복해서 보며 향수를 달랬고, 누구보다 일찍 집을 나서기에(등교가 제일 어려웠어요 참조) 가장 빨리 집에 돌아와 밤늦게까지 엄마와 누나를 홀로 기다려야 하는 열한 살 남동생은 키보드에 디폴트로 입력되어 있는 알 수 없는 곡들을 귀로 듣고 따라 치는 신기에 가까운 재능을 발견했다.


그렇게 우리의 과테말라 살이는 진화하고 있었다.

.

.

.


“내일 벌써 토요일이네... 점심쯤에 둘이 버스 타고 띠깔 와서 거기서 뭐 좀 사 먹고 놀고 있어. 식당 문 닫으면 이모네 차 타고 같이 집에 오자.”


금요일 밤이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이모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주방 일을 도와주며 생활비를 벌었는데, 그 식당은 당시 과테말라에서 가장, 아니, ‘유일한’ 현대식 쇼핑몰의 식당가에 있었다. 그 쇼핑몰 이름은 과테말라의 유명한 마야 유적인 띠깔(Tikal)의 이름을 따서 띠깔푸뚜라(Tikal Futura)다. 사람들은 그냥 띠깔이라고 불렀다.


띠깔은 1996년에 지어졌고 당시 과테말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는데, 무려 3층짜리 쇼핑몰이었다. 그러니 1998년의 띠깔은 '핫플'중의 '핫플'이었고, 우리는 매주 토요일이면 그 핫플의 1층, 2층, 3층을 무한반복적으로 돌고 또 돌았다. 그것이 초기 과테말라 생활의 유일한 문명 생활 시간이었다.


<출처: Tikal Futura 공식 페이스북>


처음 몇 주는 매우 흥미로웠다.


쇼핑몰이 아니라, 그 쇼핑몰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과테말라 '찐' 현지인들(우리는 당시 '원주민들'이라고 불렀고), 그러니까 마야 문명의 화려한 색채가 잘 묻어난 과테말라 전통 의상을 입고 주로 1차 산업에 종사하는 현지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출처: albright.edu>


쇼핑몰이 무려 3층씩이나 되다 보니 쇼핑몰 중앙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는데, 바로 그곳이 나와 내 동생의 '핫스팟'이었다!


문제의 핫스팟 띠깔 에스컬레이터(현재의 모습이므로 1998년에는 좀 더 humble한 모습이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연결되는 상향 에스컬레이터 앞에 알록달록 인형 같은 의상을 입은 인형처럼 아담한 과테말라 여성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매우 긴장되고 수줍은 표정으로 에스컬레이터를 다 같이 쳐다본다. 이내 서로를 쳐다보며 꺄르르 꺄르르 작은 소리를 내는데, 웃음인 것 같기도 하고 비명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한 명이 결심이 굳은 표정으로 손잡이를 잡고 살짝 손잡이에 몸을 기대어 에스컬레이터에 잽싸게 올라탄다. 그 순간, 나머지 여성들이 꺄르르가 아니라, 큰 소리로 "꺄아아아"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얼굴엔 새빨간 웃음이 맺힌다. 2층에 도달한 그 용감한 여성이 성취감에 상기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렇게 한 명씩...

마치 에버랜드에서 T익스프레스에 올라타듯이.


<출처: witheverland.com/2809 >


그런데!


매 번 꼭 한 두 명은 도저히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옮기지 못하고 몇 번씩 주저앉다가, 급기야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니, 그... 그래도 울 것까지야.

관찰하던 내가 다 놀란다.


결국, 울음까지 터뜨리는 여성들은 2층에서 손을 흔들며 응원하는 '먼저 간' 여성들을 향해 마지막 포기를 알리는 손짓을 하며 계단을 찾아 떠나고 말았다.


처음 몇 주는 그 현장이 너무 재밌어서 주중의 현실 고난을 망각한 채 과테말라 살이에 정이 갈 지경이었다.


아담하게 화려한  여성들의 에스컬레이터 도전기가 신기하고, 귀엽고, 마침내  번은 같이 환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지. 이내 그 장면도 시들해지고, 3층 쇼핑몰을 눈을 감고도 돌아다닐 만큼 완벽히 암기가 끝나고 나니 엄마를 기다리는 띠깔에서의 토요일도 점점 잔인하게 느껴졌다.


결국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쇼핑몰을 배회하지 않았고, 3층 푸드코트에서 이모네 식당 쪽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숙제를 하고, 한국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것도 지겨우면 남동생과 아날로그 게임을 하며 어서 옥탑방으로 돌아갈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참, 근데 나... 무장강도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 같은데...


음. 각성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

.

.


그래, 그 토요일은 무척이나 더 지루했고.

나와 동생이 테이블에 엎드려 반쯤 잠이 들었을 때쯤.


"일어나. 가자. 이모 정리 다 했다."


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엄마, 이모와 함께 이모네 운전기사 쎄살이 대기 중인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이모네 차는 12인승 하얀색 Van이었고, 그 차는 2년째 쎄살이 운전하고 있었다. 쎄살은 우리를 발견하자 그 특유의 무표정하고 게으른 얼굴로 늘척늘척 운전석에서 내려 이모의 가방과 카운터 금전함을 뒷좌석에 실어 주었다.


차에 타면 이모의 하루 정리 및 내일 상황 브리핑이 시작됐고, 스페인어로 한참을 쎄살에게 아블라 아블라 하다가 한국말로 엄마에게 내일 새벽 시장에서 뭘 사야 하는지 하이톤의 까칠한 음색으로 속사포 랩을 하듯 이야기를 했다.


토요일  집에 오는 길은 매주 그렇게  따가웠지만, 그래도 나와  동생은  시간을 즐겼다.


그 시간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우리가 픽업트럭 짐칸에 쭈그려 앉지 않고, 닭장 버스에 매달려 이동하지 않는, 매우 안락한 교통수단을 누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 자동차 시트의 안락함이란!!


30분쯤 걸려 동네에 진입했다. 이모네 집은 동네 초입이고, 우리 옥탑방은 동네 끝자락이다. 당시 그 동네는(다시 말하지만 과테말라에서 그래도 부유한 동네에 속함) 가로등 설치 전이었기에 집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어두운 밤의 유일한 조명이었다.


어두운 도로를 따라 이모네 집 근처에 다다라 차 속도가 거의 죽었을 때쯤,


"타당! 퉁!"

"쾅쾅!! 퉁퉁퉁!!!"


갑자기 무언가 우리가 탄 차를 사방에서 몽둥이로 마구 내리 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거렸다.


"뭐야!!!"

"엄마!!!"

"왜 이래!!!"


우리는 동시에 소리쳤고.


쎄살이 이모에게


"세뇨라킴... 강도 같아요..."


라고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느릿 말을 하며,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우리는 더욱 질겁했고, 그 순간 창문을 통해 미국 영화에서 보던 총구가 스윽- 들어왔다.



쎄살은 이모에게 그냥 돈을 주라고 말을 했고, 이모는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하고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얇은 입술을 앙다물었다. 쎄살은 다시 한번 차분하게 긴 팔을 휘적이면서 뒷자리의 돈통을 줘버리라고 설명했다.


아니, 이 양반 뭐지? wow. 과테말라 사람에게 이 정도 일은 늘상 있는 일이란 말인가? 쎄살의 그 일관된 무표정과 지루한 말투는 과연 엄청난 내공에서 나온 것이었단 말인가?


그 순간, 강도들은 다시 차를 부서질 듯 내리치며 흔들어댔다.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우리가 죽는구나... 과테말라에서 이렇게 총 맞아서... 총 맞으면 대체 얼마나 아플까.... 순간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고. 서울로의 순간 이동을 간절히 기도했다.  


쎄살이 차에서 내렸다.


헉.. 쎄살.. 설마.. 강도들을 다 제압하는 건가요..??


라는 생각도 찰나.


........


뒷좌석 문이 드르르륵- 열렸고.


총을 든 쎄살이 보였고.


"세뇨라킴...여기 제 친구들 세 명이나 있어요.... 그냥 돈통만 주면 갈게요.... 주세요....."


그래...!!

그게 바로 1998년 과테말라식 반전이었던 것이다.


2년간 매일. 조용히. 무표정으로.

이모네 가족들을 위해 운전을 하고, 짐을 나르며.

늘 늘척거려 게을러 보이던 쎄살은.


사실은

매우 부지런하고, 단호하게,

'투잡'을 뛰고 있었던 것이었다.


쎄살은 끝까지 예의 바르게 이모를 '세뇨라킴'이라고 존칭을 써서 부르며 정중하게 충을 들고는 정확하게 이모의 얼굴 앞까지 총구를 들이밀었고.


이모는 분노와 공포로 눈이 새빨개진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돈통을 거냈다.


쎄살은 친구 셋을 데리고 조용히 수풀더미 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 세 식구는 이 모든 것을 Van 가장 뒷좌석에 앉아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한 마디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지켜봤다.


강도들이 수풀 뒤로 완전히 사라지자, 정신이 든 이모는 바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강도를 당했어요!!! 총을 들었다고요. 여기가.. 어.. XXX주소인데. 지금 막 강도들이 도망쳤고.. 아무튼 빨리 와주세요!!"


이모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덜덜 떨면서도 평소보다 두배는 빠르게 스페인어를 와다다다 내뱉었다. 그런데 이모의 표정이 쎄살이 강도로 돌변하여 총구를 겨눌 때보다 더 당황스럽게 변하더니....


"그게 무슨 말이야!! 미친 거야?? 내일 온다는 게 무슨 말이냐고?!?!?!"


이모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잠시 전화기 너머에 아블라 아블라 경찰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모는 체념한 듯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됐니? 응? 뭐래? 지금 오는 거지?"


엄마가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가 말했다.


"내일 온데...."


"..........."




경찰이 말한 '내일'이 밝았고.


경찰은 오지 않았다.


이모는 경찰에 수 없이 전화를 하고, 경찰서에도 찾아갔지만,


경찰은 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그리고 또 그다음 내일도....


경찰은 오지 않았다.


그렇게 쎄살의 투잡은 성공적이었다.

.

.

.


"Perfect Crime"


그것은 1998년 과테말라에서 '부지런'하면 가능한 일이었던 것이다.





덧) 대한민국 모든 경찰공무원분들에게 진심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합니다. 살기 좋은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06화 엄지손가락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