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야 하는 책임
최근 칸느 영화제에서 대한민국 배우 송강호 씨가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 '브로커'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그리 자랑스러운 내용은 아니었다.
베이비박스
한 번쯤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된 사람에 속한다.
내 커리어가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룬 후부터 나의 관심은 사회적 책임이었다. 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거쳐 꽤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꽤 행복하게 살게 된 나는 봉사와 기부를 통해 사회에 미약하게나마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박처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가 키우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 아이들에게 관심이 가장 많았기에 내가 사는 지역의 보육원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알아보던 중 영화 '브로커'를 보게 되었고, 베이비박스를 알게 되었다. 주변에 쉽게 있는 곳이 아닌데 마침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울에서 유일한 베이비박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망설이지 않고 연락을 했고, 오늘 첫 봉사를 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을 하고 있다. 2009년 즈음인가 그 교회 앞에 누군가 상자에 아기를 담아 놓고 갔고, 그것을 본 목사님은 그 아이를 살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매년 조금씩 시설을 만들어 나간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운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이곳 베이비박스를 거쳐간 아기들이 약 2,000명 이상이라는 사실, 가끔은 하루에 두 명의 아기가 들어오기도 한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다.
보육사들의 안내를 받아 아기방에 들어서니 현재 6명의 신생아들이 보호를 받고 있었다. 생후 19일이 된 가장 어린 아기부터 며칠 전 100일 상을 받은 이곳에서 가장 큰 아기까지 말 그대로 핏덩이 같은 아기들이었다. 아기들 중 2명을 배정받아 돌보았다.
우리 집 강아지보다 더 작은 생명체가 겉싸개 속에서 팔다리를 꼬물거리며 입에 물려준 분유를 빨아먹는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건만 분유통 젖꼭지를 입에 대면 본능적으로 입 속에 쑥 집어넣고는 힘차게 쪽쪽거리면서 꼴딱 꼴딱 잘도 먹는다. 내 한 팔에 다 차지도 않는 작은 아기가 아무것도 담기지 않아서 투명하게 맑은 눈을 껌벅거리면서 온 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먹는다.
살려는 거겠지.
그러니 살려야 하는 거겠지.
잠시 스쳐가는 곳일 뿐
이곳 베이비박스는 그저 신생아들이 잠시 보호받다가 지나가는 곳이다.
대부분 출생 직후의 아기들이 이곳에 온다. 생모가 미성년자 거나, 생활고에 시달리거나, 기타 나름의 이유로 출산까지는 가능했지만 키울 수는 없는 엄마들이 이곳에 아기를 두고 간다. 그 생모들 중 대부분은 시설 책임자 분과 상담까지 진행한다.
이곳에서 아기들이 보호를 받을 동안 생모들은 입양을 진행할지, 시설로 보낼지 혹은 본인이 조금 준비의 시간을 갖고 데리러 올지를 결정한다. 이곳의 책임자도, 이후 인계되는 지방자치단체의 담당자들의 설득과 도움으로 생모가 아기를 데려가서 키우면 가장 좋은 경우이고, 그나마 생모가 아기를 출생신고까지 해서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입양을 보내줘도 괜찮은데. 가장 안타까운 것은 생모가 아기의 출생신고조차 거부하고 말 그대로 버리는 경우다. 그 경우는 결국 시설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통계를 보면 엄마에게 돌아가는 아기들이 15%, 입양을 가는 아기들이 17% 정도이고, 나머지는 결국 시설로 보내지고 있다고 한다.
베이비박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쟁이 있을 수 있다. 베이비박스는 영아 보호인가 유기 조장인가의 논란부터 아기를 두고 간 부모는 유기죄로 처벌을 해야 하는가, 베이비박스의 정확한 법적 근거는 마련되어 있는가, 국가가 나서야 할 영역을 개인들에게 전가하고 있지는 않은가, 입법의 미비는 언제 개선될 것인가 까지 그 범위도 작지 않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논쟁을 통해 사회적 보호망의 구멍 난 부분들을 온전히 메꾸는 방향으로 신속하게 결론지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런 절차와 법, 행정과 비용 등이 완벽하게 형태를 갖출 때까진 비록 미봉책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는 아기들이 살 수 있도록 지켜야 한다. 지금 완벽한 시스템이 없다고 해서 무엇보다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는 그 아기들을 방치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음 주에도 아기들을 돌보러 간다.
내가 일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 정도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답을 찾기 위해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파되어, 좀 더 큰 논쟁들이, 좀 더 자주 일어나서, 우리 사회가, 정치가, 문화가 이 문제를 적극 해결하는 시기가 더 빨리 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