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관측 역사상 최고 기록의 폭우가 중부권을 강타했다. 국민의 약 1/3이 모여 있는 수도권에 재난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국민들은 정부의 기민한 역할을 기대하며 그 중심에 있는 리더를 쳐다보게 된다. 우리의 리더가 이 시간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지, 적절하고 신속한 조치를 해주는지, 믿음직한 모습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지 등의 기대들을 한다.
그런데 어젯밤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록적인 폭우만큼 기록적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8일 이른 저녁시간 이미 호우경보가 떨어졌고 핸드폰에는 끊임없는 비상 문자가 빗발쳤다. 그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한 보고를 시시각각 받고 있을 대통령이 그런 상황에서 자택으로 퇴근을 했다. 게다가 그 자택은 일반 국민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는 그야말로 일반 가정집이니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상황관리실'이라는 항변은 왠지 실감 나게 와닿지 않는다.
이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오늘 아침 대통령실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새벽 3시까지 전화로 지시를 했다는 사실을 몇 번에 걸쳐 강조했다. 하지만 바로 그 대통령의 자택 코 앞이 물바다가 되어 퇴근길 국민들은 자동차를 버리고 대피하고, 집에 갈 수 없어서 근처 숙박시설로 이동하고, 아이들은 학원에서 대피했으며, 일선 공무원들은 아수라장 속에 제 몫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대통령이 전화로 시시각각 보고 받고 있었으니 그의 역할을 다 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물론, 대통령은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길거리에 나와서 막힌 하수구 뚜껑을 열고, 자동차 위에 고립된 시민을 구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결코 그의 역할이 아니다.
과연 그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부터 오늘 이 시간까지도 상당히 즐겨 쓰는 말이 떠오른다.
"선제적 대응"
과연 그는 선제적 대응을 하고 있나? 그것을 묻고 싶다. 선제적 대응은 일반 국민과 일선의 공무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주문인가? '선제적 대응'이란 것은 동시적 또는 사후적 대응보다 더욱 과감한 조치이다. 그런 만큼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더 큰 결단과 개입이라는 '선제적 리더십'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본인의 강력한 의지로 모든 시스템이 갖춰진 청와대를 나왔고, 청와대 밖에서도 충분히 재난 상황과 국가 안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고 누차 국민들에게 강조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어젯밤과 같은 재난 상황에 칼퇴를 해서 자신의 자택에 갇혀 옴싹 달짝 못하는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됐다. 퇴근을 미루고 상황을 지켜봐야 했고, 노란 잠바를 입고 막힘없이 상황을 지휘해야 마땅했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선제적 대응 아닐까?
재난이라는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이 고립되어 보이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특히 우리는 과거 비슷한 상황에 대한 큰 트라우마가 있지 않은가. 그때도 청와대의 설명은 유사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나, 보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제적 대응'을 주문만 하지 말고 부디 선제적 리더십을 보여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