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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과가 나에게 남긴 것: 의심의 미학

전공 공부를 하면서 얻은 부가적인 능력

by 삐빕
Thirdman 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5060985/


미술사학 전공자의 직업병

미술사학을 전공하면서 여러 가지 '직업병'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생겼다. 내 본래 성격의 영향이 있겠지만, 나는 이 부분을 상당히 미술사학이 강화시켰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측면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확실한 것은 '정보를 의심하는 능력'이다. 무슨 말이냐면, 누군가 말하거나 쓴 내용의 확실성을 의심하고 보는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 과제를 위해 글을 쓰거나 수업에서 발표할 때마다 과외 선생님은 물론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질문을 받았다. "이 작품의 제작 연도가 맞나요?", "이 사람이 정말 그 전시에 참가했다는 증거가 있나요?", "정말 이 책에서 출처로 가져온 정보가 맞나요?"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이 상당히 까다롭고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학문의 본질임을 깨달았다. 내가 작성한 내용들을 계속 의심받으며, 이 단어가 이 맥락에서 쓰는 게 맞는지, 내가 쓴 연도는 정확한지, 정말 이 인과관계가 맞는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질문을 받다 보니 글을 쓸 때 그 부분을 확실하게 하게 되었다.


이러한 '건강한 의심'의 습관은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모든 정보는 출처가 있어야 했고, 그 출처마저도 의심의 대상이었다. ‘대가’의 글이 아니라면 무조건 의심을 하고 보는 것이다. 1차 자료와 2차 자료의 구분, 당대 기록과 후대 해석의 차이, 그리고 학자들 간의 의견 충돌까지. 모든 것이 '확실성'이라는 필터를 통과해야만 했다.


수습 가이드의 팩트 체크

이런 태도가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났을 때는 내가 처음으로 도시 가이드를 하려고 지원하고 수습으로 따라다닐 때였다. 미술관 안에서 하는 가이드가 불법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가이드는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거나 베르사유나 지베르니 같은 근교 투어였다. 멀리는 몽생미셸까지. 여행 업체에 들어가서 기존 가이드가 하는 투어를 쭉 함께 들었는데, 그가 유려하게 하는 말이 의심스러운 것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베르니에서 그는 모네가 로또에 당첨이 되었다고 했다. 전시 카탈로그를 주로 읽는 나는 그 정보가 신선했다. 그런 예술가의 ‘뒷이야기’는 전시 카탈로그 같은 학술적인 텍스트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내용을 처음엔 의심했다기보다 그 시대에 로또가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찾아보다가 ‘모네가 로또에 당첨되었다.’는 사실이 한국어로 된 딱 하나의 기사로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무분별하게 확산된 사례였던 것이다.


또, 그 가이드는 노르망디 지역에서 '이곳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사과 농사를 짓는다'라고 했다. 머릿속에선 바로 의문이 생겼다. 센강이 노르망디로 흐르지 않나? 이 지역이 실제로 고도가 높은 곳인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집에 돌아와 '사과 재배에 필요한 조건들'에 대해 상세히 조사했다. 노르망디는 고도가 높은 지역이 아니라 대서양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사과 재배에 적합한 곳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업체로부터 받은 기본적인 내용들을 토대로 내가 더 할 수 있는 말들을 정리하면서 그가 투어 동안 말한 정보들 중 의심스러운 부분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을 가졌다. 예상대로 많은 부분이 틀린 정보였다. 여행사에서 제공한 기본 정보 자료마저도 믿을 수 없어졌다. 그래서 모두 다 하나하나 사실 확인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시간은 말도 안 되게 오래 걸렸다.


어차피 가이드가 투어 동안 하는 말은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잊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어라는 프로그램에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어떤 전문가가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때, 그 작은 것 하나가 투어 동안 내가 이야기하는 모든 정보의 신뢰성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안의 까다로운 친구

이러한 '정보 불신'의 습관은 일상생활의 다른 부분으로도 확장되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볼 때도 그런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어떤 책이 내용이 빈약하다고 느껴질 때 참고문헌을 살펴보면 예상대로 인용 자료도 부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실은 정말 참담하다. '예술' 코너에 있는 가벼운 서적들은 그렇게 걸러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견해가 지나치게 많은 책은 에세이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의심의 습관'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든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은 정신적으로 매우 소모적이라 종종 스스로가 너무 피곤해진다. 하지만 미술사학이 나에게 남긴 이 '건강한 의심'의 유산은 결국 내 삶의 질을 높였다고 생각한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그것이 쌓아 올리는 신뢰의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림 한 점, 건물 하나에 대한 작은 사실들이 모여 역사를 구성하듯, 우리가 나누는 일상의 정보들도 서로의 현실을 구성한다. 그 구성이 튼튼하려면, 우리가 나누는 정보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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