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빌딩의 경쟁력은 곧 그 자산의 가치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현업에서 여러 빌딩을 다니다 보면 이런 원칙을 잘 지키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는 부동산을 보유한 소유자의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펀드나 리츠가 소유한 자산은 가치를 높여 높은 가격에 매각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경쟁력을 높이려 합니다. 반면 일반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자인 경우에는 처분보다는 보유 목적이 더 크기 때문에, 단기간에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비용 효율화에 관심이 많은 경우가 더 많은 편입니다.
부동산 시장이 임차인 시장으로 바뀌더라도 경쟁력이 있는 빌딩은 좋은 임차인을 골라 받을 수 있습니다. 대기 수요가 있으니 공실 걱정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임대료를 높게 책정해도 들어오겠다는 기업을 선별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곳은 렌트프리(Rent-free)나 공사 지원금을 줘 가며 임차인을 모셔 와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빌딩의 경쟁력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서 판단해야 할지, 비교할 수 있는 조건들을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단순히 신축 빌딩이라고 해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임차인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사용하기에 편한 빌딩’의 조건들을 살펴보려 합니다.
겉모습만 화려하지 않은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물론 물리적인 스펙은 중요합니다. 쾌적한 층고, 넉넉한 전기 용량, 최신식 공조 설비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요즘은 로비에 스피드게이트를 설치해 보안을 강화하고, 엘리베이터 대수를 늘려 대기 시간을 줄이는 것도 필수 요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말 그대로 ‘하드웨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요소들은 돈을 들여 리모델링하면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 지어지는 신축 빌딩들은 워낙 상향 평준화되어 있어, 설비만으로는 차별화가 쉽지 않습니다. 진짜 경쟁력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판가름 납니다.
1. 설명이 필요 없는 ‘인지도’
택시를 타거나 미팅을 잡을 때 빌딩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곳이 있습니다. 이런 인지도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가치입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빌딩이거나 대로변에 위치해 시인성이 좋은 건물은 그 자체로 입주사에게 자부심을 줍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명함에 주소를 넣는 것만으로도 신뢰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의 규모가 크거나 외관이 독특해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면, 그 또한 강력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빌딩의 인지도를 활용한 전략은 공유 오피스 사업자들이 초기 사업 확장을 할 때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인지도가 높은 프라임급 빌딩이나 대로변 인지도가 높은 빌딩에 입주함으로써 신뢰도를 높이고, 이를 홍보에 활용해 임차인을 모집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사업을 새로 시작하거나 소규모 기업의 경우 대형 빌딩에 바로 입주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인지도가 있는 빌딩에 입주한 공유 오피스를 사용하면서 빌딩 인지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같은 면적이라도 더 넓게 쓰는 ‘임대 효율’
임차인들이 계약 전 가장 꼼꼼하게 따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용률’입니다. 관리비나 임대료는 계약 면적 기준으로 내지만, 실제로 직원들이 책상을 놓고 일하는 공간은 전용 면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임대면적이 100평일 때, 전용률이 40%인 곳과 60%인 곳은 실사용 면적에서 무려 20평이나 차이가 납니다. 이 20평의 면적은 공용 회의실을 만들거나 개인 업무 공간을 더 만드는 데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임대료와 관리비를 생각한다면, 전용 면적에 따라 비용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임차인들이 빌딩을 선택할 때는 순점유비용(Net Occupancy Cost)을 고려해 비용 효용성이 높은 곳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임대 공간의 레이아웃’도 한몫합니다. 큰 기둥이 사무실 한가운데 박혀 있어 책상 배치가 애매하거나, 창가 주변으로 꺾인 공간이 많아 못 쓰는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가 많은 구조는 임차인이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반듯한 직사각형 구조에 기둥을 측면으로 몰아 공간 효율을 극대화한 빌딩은 연식이 좀 되었더라도 임차인들의 꾸준한 수요가 있습니다. 결국 임차인에게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사용하는 ‘공간’의 효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3. 관리비가 아깝지 않은 ‘서비스 수준’
빌딩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관리비는 비싼데 해주는 게 뭐냐”는 불만이 나온다면, 그 빌딩의 경쟁력이 위험할 수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프라임급 빌딩일수록 관리비가 높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임차인은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최근 트렌드는 단순한 시설 관리를 넘어 호텔급 어메니티(Amenity)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구내식당 정도가 전부였다면, 이제는 입주사 전용 라운지, 공유 회의실, 수면실, 피트니스센터 등이 필수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호텔 운영사가 직접 관리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층 하나를 통째로 임차인 전용 공간으로 비워 두는 과감한 투자를 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마곡의 원그로브, 종로의 그랑서울은 해비치호텔앤리조트가 호텔 수준의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이런 공용 공간 덕분에 자체 회의실을 줄여 인테리어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직원 만족도까지 높일 수 있으니 높은 임대료와 관리비를 기꺼이 지불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스펙도 중요하지만, 빌딩에서 제공하는 콘텐츠가 서비스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스트레스 없는 ‘주차 시설’
마지막으로 오피스 빌딩 운영 관리에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주차입니다. 주요 업무 권역에 넉넉한 주차 공간을 확보한 빌딩은 그야말로 숨은 경쟁력을 가진 곳으로 대접받습니다. 도심에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해 부설주차장 설치 제한 구역도 있다 보니, 대형 빌딩 가운데 주차 시설이 충분한 곳은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식 주차 공간이 충분한지, 진출입로는 편리한지, 발렛 서비스가 제공되는지 등은 임차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히든카드’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임원 차량이나 방문객이 주차할 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한다면, 아무리 좋은 사무실이라도 오래 머물기 힘듭니다. 또 경우에 따라 영업 조직이 있는 곳이라면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이나 영업용 차량의 주차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임차 선택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마무리하며
빌딩도 살아 있는 생물과 같습니다. 한 번 지어 놓으면 끝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임차인의 니즈에 맞춰 끊임없이 관리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빌딩이 어떤 서비스 스탠더드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건축이나 기계 설비 같은 하드웨어에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른 빌딩들도 하는 수준에서 머물기보다는, 더 나은 임대료와 관리비를 받기 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임차인이 진짜 원하는 것은 화려한 외관 너머에 있는 실질적인 효율과 호텔 같은 서비스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언급한 4가지 요소를 꼼꼼히 챙겨 경쟁력을 높인다면, 불황에도 잘 견딜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자산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