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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꼬였었다?



군대에서부터였다. 나는 4월 입대 군번에 바로 내 위로는 11월까지 이어지는 선임들이 줄줄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꼬인 군번이었다. 군대는 계급이 중요하고 윗사람보다 아래 사람이 있어야 편한 법이다. 그래서 누구나 다 달아본다는 분대장 견장도 달아보지 못하고 제대했다. 분대장은 군대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회사에 팀장이 있듯 내부만을 이끌어 나간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와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 바로 위 선배들이 많이 있었고 자리를 빨리잡고 팀장이 되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좋은 회사로 자리를 잡아 떠나갔다. 군 생활처럼 나에게는 리더 역할을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14년 동안의 회사 생활 중 가장 오래 다니던 회사를 이직했던 이유도 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없는 조직 구조도 한몫을 했다. 물론 새로운 프로젝트를 통해 더 배우고자 하는 열망도 컸다. 하지만 그보다 길이 밀리는 게 뻔히 보이는 도로 위에 계속 남아 있을 순 없었다. 내 인생에서 유턴이 필요했다. 그래서 좋은 직장이었지만 과감한 결단을 내려 이직을 했다.

나는 언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리더가 돼서 내가 기획하고 생각했던 일들을 해보고 싶었다. 만약 내가 좋은 자리에 올라갔었다면 선배들처럼 잘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데 그 자리가 나에게는 좀처럼 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 편으로 내가 과연 그런 직책을 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더 많은 책임과 의무가 필요한 일일 텐데 겁이 나기도 했다. 여러 생각을 해봤지만, 결국 돌아보니 남의 떡이 더 커 보인 것에 불과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관찰만 했지 내가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과소평가를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시간은 똑같이 흘렀고 나의 선배들이 변한 만큼 나도 뭔가 달라졌고 분명히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췄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어떤 것들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봤다.

더 많은 실무를 배울 수 있었다.

위에 항상 누가 있다 보니 현업에서 일할 기회가 많았다. 누가 만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을 더 많이 했다. 큰 그림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무의 디테일을 아는 것도 부동산업계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위로 빨리 올라가지는 못했지만 현장의 일을 하면서 실력을 더 많이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만큼 내공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의사결정만을 하는 자리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현업의 자리가 나에게는 몸이 기억하는 노하우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현장에 더 가까이 있다 보니 내가 부족한 게 어떤 것들인지 더 빨리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내 부족함을 느끼고 자기계발을 더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준 셈이다.  

내가 하는 일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회사 조직에서는 내가 하고 싶다고 원하는 자리에 쉽게 가는 게 아니다. 발버둥 거리며 사내 정치를 하고 기회를 노리는데 에너지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 대신 내 능력을 의심했다. 과연 내가 가진 능력으로 어떤 전문성을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내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가지 못한 게 조직구조와 남탓이 아니라 냉정하게 말하면 실력이 없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매일 내가 하는 업무를 누군가에게 체계적으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말이다. 만약 내가 팀장이나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가질 여유도 없었을지 모른다. 차라리 잘 된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책까지 쓰고 내가 아는 것을 체계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덤으로 책을 통해 지금 나는 다양한 분야의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있다.

사실 그 자리는 별게 아닐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올라가고 싶어 했던 그 자리는 생각보다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어릴 때 뛰놀던 동네에 갔다가 예전에는 높기만 했던 담벼락의 높이가 지금은 내 눈 밑에 있던 것과 같은 그런 기분과 비슷했다. 그땐 높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별게 아닌 그런 느낌이다. 내가 부러워했던 그 자리는 어릴 적 담벼락에 불과했는데 괜히 조급했던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결되거나 풀릴 일들이었는데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다.

나는 남들처럼 일찍 좋은 자리에 먼저 가는 행운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냥 하는 일을 좀 더 잘하고 싶어 부지런히 자기계발을 했던 게 지금에 와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더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는 일에 대한 의미와 사명감을 찾는 게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꼬였다 생각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나를 먼저 돌아봤어야 하는데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같은 것들에 먼저 관심을 가진 내탓이다. 내가 하려고 했던 게 무엇인지 그리고 보람을 느끼는 일이 뭔지 고심하지 못했다. 그동안 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었지만 나를 돌아보라는 말의 의미를 쉽게 지나쳤던 것이다. 속도가 중요하고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찬 주변에서 벗어나서 가끔은 멍 때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다. 그러면서 남이 아닌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지금껏 남을 의식하고 남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라도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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