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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그라피 Jun 17. 2020

코로나바이러스로 걸린 '실업' 전염병.

저는 사진가입니다.  

프랑스 사진 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저는 또 가이드이기도 합니다. 

프랑스에서 전문 학사(licences professionnelle) 과정을 통해 공인 가이드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저는 3월 이후로 사진을 찍으러 나갈 수도, 누군가에게 역사나 작품, 장소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 의지도 누구의 탓도 아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존재에 의해서 말이죠. 

세상은 참 신기한 일투성인 것 같습니다. 

파리에 온 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로 인한 유럽 이동 대혼란, 집 근처에서 벌어진 참혹한 파리 테러, 150년 만의 센강 홍수, 노트르담 성당 화재까지 겪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갔는데 듣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는 바이러스 때문에 50일을 넘게 집-슈퍼마켓-집이라니. 


파리에서 지낸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어쩌면 저는 한국 직장생활이 더 맞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그때는 취미로 하던 사진을 더 잘 배워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파리로 서른다섯에 떠나왔습니다. 늦었다는 말이 더 맞는 나이라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왜 파리냐고요? 그저, 그때까지 제가 직장 생활을 해서 벌어 둔 돈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곳이라 생각했어요. 참 단순하죠. 맞아요. 지금도 저는 단순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귀엽다고 연발하는 짝이 옆에서 웃고 있고, 다른 사랑스러움을 가진 민식이 (저희 집 고양이랍니다.)가 밥을 달라 불러요. 현재 제 파리 생활의 대부분 이기도 합니다. 솔직하게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가이드 일이 생활하는 데는 더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두 가지 일 모두 저에게 소중합니다. 

어쩌다("어떻게"라고 생각하려 노력 중이기는 해요.) 10년이 넘는 시간을 외국에서 보냈을까? 

가끔은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해요. 사는 건 누구든 최선이니깐요. 


그런데 이렇게 턱 하니 강제로 여유라고 해야 할지 "실업의 시간"이 생겨버렸네요. 

마치 자기가 주인이었던 것 마냥 안방에 떡하니 차지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셧다운이니, 여행을 오는 사람도 없고 프랑스는 3월부터 외출 제한령으로 옴짝달싹 못 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좋아하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사람 구경도, 루브르의 모아이 상을 보러 갈 수도, 모르는 동네 골목 산책도 불가능합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지난 두 달간 해봤습니다. 미뤄둔 책도 읽고 혼자 할 수 있는 운동도 하고 영화도 보고 정말 재능이 없는 요리도 해보기도 했는데, 마음이 답답해 오기만 합니다. 

그러다 카페의 테라스를 여기로 옮겨오는 건 어떨까? 박물관이나 풍경, 골목을 여기서 다시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를 만날 수 없다면 그리고 만나러 올 수 없다면 요즘 말하는 랜선 소통을 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고민에 첫 페이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누가 내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르죠. 저기 멀리에 저런 사람도 있구나, 또는 지금은 못가도 나중에 같은 풍경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도움이 될지도 모르잖아요. 이런 이유도 글을 쓰는 목적이 될 수 있는 거 아닐까? 

작은 기대감에 지난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을 서툰 글과 사진으로 나눠보고 싶습니다. 



8월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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