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에서 1년 살기
상수동 일기③
이 동네에 작업실을 만들고 상수동 주민 아닌 주민이 된지 6개월.
일과 일 사이에 여분의 시간이 생기면 기웃기웃 하는 일이 또하나의 일이 되었다.
작은 책방, 덮밥집, 카페, 1인 사시미집 그리고 한강변을 따라 절두산공원까지 걷는 산책.
그 발걸음의 끄트머리에서 몽마르뜨르언덕위 은하수다방을 만났었다. 합정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가 이 곳 상수에서 오아시스처럼 다시 나타난 곳. 목마름 끝의 샘물처럼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 은하수다방을 지나 당인리 발전소쪽으로 걷다보면 작고 오래된 미용실이 보인다.
풀잎 미용실. 용자의 ㅇ과 실자의 ㅣ가 떨어져나간 손바닥만한 간판이 풍경처럼 바람에 살랑였다.
엷게 코팅한 창 안에서는 백발의 미용사가 그에 못지 않게 나이드신 어르신에게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계신다. 얼마나 미용실을 하셨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깍고 지지고 볶으셨을까.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한참동안 창 안을 들여다 보았다. 거울이 앞에 놓인 미용 의자라곤 고작 2개가 전부. 어찌보면 합정역 쪽에서 물밀듯이 퍼져들어오는 카페, 술집, 옷가게 같은 젊음의 거리 속 한가운데서 이 작고 초라한 미용실은 섬같있다. 무슨 돈을 벌 공간은 아닌 것 같고 아직도 동네에 남은 나이드신 원주민들이 머리도 하고 이야기도 하는 사랑방 같은 느낌. 그래 나도 이 동네 사람으로서 다음에는 한번 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깍아야지^^ 생각을 했다가 몇 걸음 걸어가지도 않아서 급 그 생각을 접어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오자... 조금 더 나중에 오자... 지금 당장 하지 않을 생각, 행동을 담아두는데는 나에겐 마음금고만큼 편리한 게 없다. 다만 그 금고에 너무 많을 것을 넣어두어 더이상 넣을 수 있을 공간이 없지 않기를 바라며, 또 자주 그 금고를 열어 잊고 있던 생각과 행동을 꺼내 실제 해보기를 바랄 뿐이다.
풀잎 미용실. 그래도 내가 이 동네 사람 DNA를 조금만 더 얻게 되는 조만간 이 미용실에는 한번 들르리라. 이 동네로 이사왔다 인사 드리고 믹스커피 한잔 얻어 마시며 백발 미용사님의 동네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2021.12.12.
C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