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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지앵 주부 입문기

by 파리새댁

주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도, 딸을 시집보내는 엄마도, 나의 오랜 친구도 걱정했던 것. 부끄럽지만 정리에 잼병이었고, 요리란 밖에서 사 먹거나 엄마가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 나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못할 거 하나 없었다. 일단 한 번에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건 무리라 남편과 나, 둘 중 조금이나마 실력이 나은 걸 각자 맡기로 했다. 나는 요리, 남편은 청소. 그렇게 역할 분담을 마치고 나는 파리에서 주부에 입문했다.


이제는 그럴싸한 요리도 척척 만들어내는 데 그럴 때면 남편과 나는 파리에 도착해 처음 만들었던 '엉터리 볶음밥' 에피소드를 꺼내어 나의 발전에 대해 감탄하곤 한다. 짧게 말하자면, 파리 마트에 한국 쌀이 없어 폴폴 날리는 쌀을 구매해 열심히 만들었는데 아,,, 입 안에서 밥알은 굴러다니고 간도 안 맞아 도저히 먹기 힘들었었다. 그래도 포기란 없었다. 먹고살아야지! 집을 구한 뒤, 냄비도 사고 조리도구도 갖췄다. 이제 제대로 요리에 도전할 장이 생긴 것. 파리에서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고, 집밥 백 선생 님을 스승님으로 모시며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다.


밖에서 음식을 사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일단 한 끼는 한식을 먹어야 힘이 났다. 누가 한국인 아니랄까 봐. 프랑스 음식과 빵이 아무리 맛있어도 된장국이 들어가야 속이 편안하고 김치찌개를 먹어야 제대로 먹은 느낌. 그래도 어깨너머로 본 건 있어 빠른 시간 내에 제법 요리다운 요리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파리에서 한식을 만든다는 것, 고충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프랑스 유기농 시장


파리 시장에서 한식 재료 찾기,

한식에 가장 기본으로 들어가는 재료, 파! 볶음밥 할 때도 파 기름을 내야 더 맛있고, 국에도 파가 들어가야 더 시원하니까. 위의 사진 속에 보이는 프랑스의 대파. 정말이지 다시 봐도... 크다. 한국의 대파는 가녀리게 보일 만큼 두툼한 프랑스 대파. '이건 내가 찾는 파가 아닌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다른 파는 보이지 않았다. 초보 주부에게는 당황스러움 그 자체. 처음 파리에 아는 사람도 없어 물어볼 곳도 없었다. 마트에서 한참 동안 파를 보며 고민했다. '사도 될까? 이게 대파가 맞을까?' 차분하게 맘을 먹고 사전에 단어를 입력했다. Poireau. 불어로 뿌아호. 맛은 대파와 흡사한 프랑스 대파라고 한다.


Tip !
프랑스에서 대파는 Poireau라고 쓰인 파를 구매하면 된다. 쪽파는 조금 향이 다르지만 비슷하게 생긴 Ciboulette 씨불레뜨라는 파가 있다. 파전을 먹고 싶을 때는 한인마트에서 구매했다.





여행지에 가면 마트나 시장의 낯선 식재료들이 주는 신선함이 있다. 그저 신기하고 재밌고, 알록달록 색도 가지가지! 이렇게 생긴 야채도 있구나, 하고 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일단 요리를 해야 하는 주부에겐 이 모든 것이 미지의 세계였다. 프랑스 시장을 둘러보며 채소, 고기, 생선 등등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배웠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모든 게 즐거웠다는 것. 마트나 시장에 가면 기본 2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유기농 재래시장. 파리 하스빠이 길 중심으로 일요일 아침이면 양 사이드로 상점들이 들어선다. 아침에 일어나 장바구니를 들고 나서며 맞는 상쾌한 공기가 좋았다. 시장에 들어서면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 빵, 야채, 생선, 고기, 치즈, 와인, 따끈한 즉석요리 등등 없는 게 없었다.



아침으로 먹을 빵과 요리할 식재료들을 사고 나면 나도 주부가 된 느낌. 서툰 프랑스어로 상인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내가 시간이 지날수록 농담도 주고받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한식은 물론, 프랑스 음식과 빵까지 만드는 주부로 성장했으니 스스로 대견하다. 서툴지만 용기 있게 직진했던 나의 초보 주부 시절. 처음은 다 어렵고 낯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는 것, 파리에서 주부가 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Tip !
가볼만한 파리 재래 시장

1. Marché biologique Raspail
주소 : Boulevard Raspail, 75006 Paris, 프랑스 / 파리 12호선 Rennes 역 출구로 나오면 된다
영업시간 :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 같은 장소에서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일반 재래시장이 열린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 30분)

2. Marché des Enfants Rouges (마레지구)
주소 : 39, Rue de bretagne 75003 paris
영업시간 : 월요일 휴무, 화-일요일 오전 8시 30부터 오후 8시 30분

3. Marché Monge (몽쥬 약국 근처)
주소 : Place monge 75005 paris
영업시간 : 수, 금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 30분, 일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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