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첫 시작
5월의 화창했던 날, 가족들과 친구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마친 뒤 배낭과 커다란 캐리어 4개를 들고 파리로 떠났다.. 불완전했지만 그마저도 낭만이었던 우리 부부의 파리에서 3년.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우리는 종종
라는 질문을 서로에게 한다. 마치 '70% 카카오가 들어간 다크 초콜릿' 같았던 파리의 신혼 생활.
달콤하지만 쌉싸름한 맛이 여운을 남기는 다크 초콜릿 같았달까. 분명 파리의 삶으로 인생 전과 후, 많은 것이 달라졌으니까. 막연히 로망이었던 파리에 대한 생각도, 프랑스인에 대한 이미지도, 그리고 나의 시선 등 많은 것들에 대해서. 행복했던 기억들도, 때론 힘든 기억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지나 아름다운 추억들로 남아 있는 건 분명하다.
아, 별명도 생겼다! 파리 새댁. 파리에서부터 쓴 닉네임인 파리 새댁은 현재는 구 파리 새댁이지만 지금도 닉네임으로 사용 중이다. 파리에서 왔으니까 이제 파리에서 온 새댁. 뭐가 되었든 더없이 소중한 그때의 기억들, 다시 하나씩 꺼내어 나의 인생 여행기를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파리에 도착해 순간순간이 여행처럼 느껴졌다. 보는 것마다 새로운 풍경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첫 한 달간의 목표는 '파리의 우리 집' 찾기가 미션. 크게 파리에서 집을 구하는 방법은 직접 현지 부동산을 가보는 것과 프랑스존이라는 현지 교민들의 커뮤니티에서 찾는 것,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남편과 저는 어떤 용기였을까? 무모하게 둘이서 한 달간 파리의 부동산을 하나하나 다니며 집을 찾기 시작했으니.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한국인 부부가 집 찾기 미션 시작 -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무나 감사하게도 파리의 사랑스러운 동네에 우리의 신혼집을 얻게 되었다.
파리 심장부인 6구, 뤽상부르 정원 근처 186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 백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지만 리모델링을 해 안은 깨끗. 파리의 많은 아파트들이 그러하다. 처음 집을 보러갔을 때 창문을 열고 본 뷰가 맘에 쏙 들어 더 이상 집을 보러 다니지 않아도 되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싱그러웠던 파리 거리의 풍경을 매일 아침 볼 수 있다니. 한 달간 파리의 거의 모든 동네를 돌아보며 집을 구하던 수고로움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애초에 파리에서 3년 정도 살 계획이라 더 신중하게 고르고 싶었다. 하지만 파리에서 아파트를 구하는 건, 한국의 방식, 시스템과는 전혀 달랐기에 외국인인 우리에게 무척 열악한 조건. 파리의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의 서류를 보고 심사를 거친 뒤 결정하고, 또 프랑스인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도 경쟁에서 자꾸 밀리기 일쑤. 아슬아슬 기다림 끝에 얻은 집이라 애정도 남달랐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인 <에밀리인파리> 속 주인공이 사는 아파트처럼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4층에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귀국할 때까지 이사 한번 가지 않고 살았으니!
파리의 아파트 지붕은 대부분 회색 빛깔이다. 그래서 에펠탑이나 개선문 등 높은 층에 올라가 파리를 보면 회색 지붕들이 오밀조밀 모여 파리만의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회색 지붕이 파리지앵에게는 쉼터가 되어준다는 사실. 처음에 창문을 열고 사진 속 이웃을 보고 어찌나 놀랬던지. 파리지앵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책을 읽기도 하고,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있기도 한다. 파리지앵의 삶, 참 멋스럽구나.
집 앞 건물 지붕에 올라가 매일같이 시간을 보내던 나의 이웃, 가까이서 본 파리지앵은 일상도 특별하게 살아가는 법을 아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목표만을 향해 달리던 나의 삶과는 다른 느낌, 파리지앵의 여유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집 앞 빵집에서 사 먹는 크루아상과 뺑 오 쇼콜라는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였다. 빵을 좋아해서 그들의 주식인 빵이 나의 주식이 되는 데는 따로 적응 기간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파리의 삶이 행복했던 이유이자 지금도 가장 간절히 그리운 것 중 하나가 '빵'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에 비해 버터가 저렴한 프랑스는 버터 풍미가 가득한 크루아상도 1~2유로면 살 수 있다. 한국도 최근 맛으로 인정받는 빵집들이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프랑스의 빵을 뛰어넘는 건 아직 찾지 못했다. 파리에서 아무리 맛있다는 김치찌개 집을 가도 한국의 김치찌개를 못 따라가는 이치같달까.
파리에서 누리는 특권 하나 더, 뤽상부르 정원에서 매일 아침 조깅으로 시작하기. 파리지앵이 사랑하는 파리 6구의 뤽상부르 정원은 여행객들도 일부러 찾을 만큼 특별한 장소다. 1645년에 완공된 뤽상부르 궁을 중심으로 산책로, 미술관, 연못, 푸르른 잔디밭이 있다. 나도 모르게 젖어들며 파리의 삶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이 정원 덕분일 것.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나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과 인사를 주고받고,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뤽상부르 정원 한 바퀴를 뛰는 하루의 시작. 그렇게 나는 파리지엔느가 되가고 있었다.
뤽상부르 정원 옆 길들은 파리에서도 고급 아파트들이 모여 있어 풍경도 참 예쁜 곳이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도 이곳에 머무를 정도, 내 것이 아닐지라도 보기만 해도 흐뭇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삶이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편하다. 물론 한국인이기 때문일 수 있지만, 프랑스인도 인정하는 한국은 그 어떤 곳보다 생활이 편리한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도, 일처리도 느린 파리에서의 삶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건 그저 파리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쌀쌀한 공기가 스치는 여행의 시작. 날도 밝지 않은 때, 우리 부부는 여행을 떠나곤 했다. 주로 꽉 찬 일정으로 여행을 해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 기차, 비행기, 자동차 탈 수 있는 건 다 타보았다.그렇게 우리는 3년 동안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소도시 26곳, 13개국 유럽 국가의 도시들을 여행했다. 둘이서 함께 해 감사하고 행복했던 순간도, 여행 중 낯선 문화에 놀라웠던 순간도, 때로는 서로 서운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순간도 있었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더 단단해지고 깊어지는 부부가 되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결혼식이 끝났다고 완전한 부부가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돌이켜 보니 참 감사한 시간.
다시 여행을 시작하는 기분으로 보따리 풀 듯 하나씩 풀어봐야지, 눈부셨던 나의 파리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