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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Aug 17. 2019

황혼육아 느닷없이 들이닥친


 브런치와의 만남 


브런치를 알게 된 건 샤이니 종현 덕분이다.

종현이가 세상을 떠나고 허망한 마음에 그를 찾아 헤맸다.

종현을 검색하니 브런치에 담긴 종현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 작가님 글인지 이름은 기억은 나지 않는데 내 맘 하고 같았다.

위로를 받고 공부도 하고 나이도 거꾸로 먹는다는 느낌, 참 좋았다.

그래서 종종 객식구로 구경만 하다가 내 이야기도 털어놓고 싶어 신청했다.


글쓰기 허락된 날, 그러려고 그랬나 꿈자리가 좋았다.

길을 가면서도 이 메일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제목이 가슴을 쿵 때렸다.

1984년 12월 24일 중앙일보 임재걸 기자님이 보내주신 전보(電報)처럼,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으로 뽑혔으니

당선소감도 보내주고, 사진도 찍으러 오라는 짧은 전보(電報)

그때 우리 집은 전화가 없었다. 돌이켜 보면 전화가 없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이런 넋두리를 늘어놓을 수 있으니,


그때 당선소감으로 '미력하나마 우리 문단에 밑거름이 되겠다'라고 썼는데

전혀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당선작이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 되지 말라는 심사위원님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제는 풀고 싶다.

게으름과 세상에 내놓기 두려운 마음이  옹골차게 엮이어 맺어 놓은 단단한 매듭을




황혼 육아 얼결에 들여놓은  


내 사주팔자를 보면 80까지 내 발로 뛰어다니면서 먹고 산다고 한다.

사람이 부실해서 인지 귀도 얇고 눈도 밝지 않아 예기치 않은 사고를 많이 치는 탓에

앞날이 불안할 때면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 내 앞일을 묻곤 하는데

개운하지 않은 말 뒤끝에 따라붙는 점괘는 '80까지 내 발로 뛰어다니면서 먹고 산다'는 말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손에서 일이 떠나지는 않는다.


난 어렸을 때도 말을 참 안 들었다. 

학교도 빼먹고 사방팔방 구경 다니는 것은 부지기수

집만 벗어나면 세상 편할 것 같아서 가출도 여러 번 했다.

하도 말썽을 부리니까 이모랑 엄마랑 같이 점을 보러 갔는데,

이모네 딸은 현모양처로 클 것이고 나는 잡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모한테 기죽기 싫어하는 엄마는 나이 여든이 넘어서까지 그날 일을 들먹였는데

그 점쟁이가 살아 있으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 어쩌면 그렇게 용한지


난 도화살이 끼어 정신없이 살았다. 눈 뜨면 월요일 한주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몰랐다.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의 60% 이상은 남자이다 보니 그렇잖아도 술고래가 주선(酒仙)이 되었다.

그런데 내 딸은 나와는 정반대. 일만 저지르고 다니는 엄마한테 질려서

저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결심한 아이, 나이 서른을 넘어서도 연애할 생각을 안 하더니

서른둘 쯤인가


"엄마 나는 섹시하지 않아?"

"당근 안 섹시하지, 절벽이자너"


이런 대화가 오갔다. 서른이 넘도록 남자가 접근하지 않으니 고민이 많았던 모양,

그런데 어느 날 남자가 있는데 한번 만나 보라며 엄마가 싫다고 하면 안 만나겠다는 단서를 붙였다.

사위와 처음 만났던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싶다. 배꼽 빠지게 웃기므로


2008년 11월 서른둘에 결혼을 한 딸은 2009년 7월 17일에 딸을 낳았다.

혼수품으로 뱃속에 담은 아기, 나의 첫사랑 김은서,

묻고 따지지도 않고 그날로 난 황혼육아에 들어갔다. 


직장을 다니는 딸 부부, 천방지축 세상 분간을 못하는 나,

이렇게 셋이서 시작한 육아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통통 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브런치에 담을 작정인 <나의 황혼육아 비법>, 일주일에 세 번은 올리고 싶은데 잘 될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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