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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Aug 19. 2019

빵틀에 찍은 거 맹키로 타깃어


물 한 방울 들어간 것뿐인데


여든아홉에 세상을 뜨신 내 엄마 

살아 계실 때 내가 엄마한테 가장 잘한 일은

증손자, 증손녀를 안겨 드린 일,

덕분에 말씀이 많아지셨는데 한 말씀 한 말씀이

詩요. 노래였다  


세상에 나온 지 이레도 안 지난 증손녀 은서를 품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다가 툭 내뱉는 한 말씀


사람 손으로 만들라면 이렇게 못 맹글 것이여

물 한방울 들어간 것 뿐인디 요런 것이 나오고

손가락 휜 것 꺼장 지 애비를 타긴 것을 보믄

씨도둑질은 못 헌다는 말이 딱 맞어 

에미를 닮았으믄 성질이 파닥파닥 헐틴디

찝어까도 모르고 잔다잉  


엄마 말씀대로 꼬집어도 잠만 자던 은서는

커 갈수록 지 에미 닮아 보는 사람마다 '리틀 혜원'이라고 했다.

내 새끼 키울 때는 먹고사는 일이 급급해

애기 걸음마가 얼마나 이쁜 지 잘 몰랐는데

은서를 보면서 내 딸도 저랬겠다 싶어 울컥했다.


이런 내 마음에 또 말꽃을 피워주신 내 엄마


행숙이는 비만 오믄 툼벙거리고 싶어 나가자고 떼를 쓰고

혜원이 저것은 깔그막만 뵈믄 올라가것다고 지랄 허등만

은서는 너그 둘을 안닮고 존 길로만 망금당실 댕긴다잉

지 애비가 애릿적에 아리금살 걸어댕깃는 갑다 



망금당실 아리금살


엄마는 애기들이 이쁜 짓을 하면 '지랄'이라는 말을 종종 썼다.

그럴 때마다 엄마한테 애기들한테 험한 소리를 한다고 대들었는데

망금당실 아리금살 같은 종잡을 수 없는 표현에는 배꼽을 잡았다.


망금당실은 국어사전에도 안 나오는 말이고

아리금살은 최명희 혼불에서 나온 말로 알고 있다.

애기들이 허공을 걷는 것 처럼 뒤뚱거릴 때 망금당실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아마도 바가지 같은 것이 물에 둥둥 떠 내려갈 때

전라도에서는 망금당실이라고 하는 모양,

그리고 아리금살은 최명희 혼불에서 처럼 '하얀 앞치마 두른  새색시 걸음'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가 세상을 뜨신 후에 엄마가 주신 말꽃은 책갈피 속 말린 꽃으로 남았다

그러던 중 김규남 산문집 <눈 오는 날 싸박싸박 비 오는 날 장감장감>을 만났다.

같이 일하는 PD가 내가 좋아할 것이라며 쥐어 준 덕분에..


김규남 선생님의 책에서 다시 만난 '망금당실 아리금살' ..

엄마는 상황에 꼭 맞게 이 곱디 고운 말을 참 잘 쓰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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