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야 어딨니?
지금 문득 네가 보고 싶다.
내게 詩를 알려 준 너
내가 중학생이었고 네가 고등학생이었는지
아님 그 반대인지 가물가물 하다.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그때 난 엄청 뚱뚱했고 넌 참 핸섬했어
까만 교모(校帽)에 반듯한 교복, 날이 선 턱선과 눈빛
우린 무슨 독서동아리 멤버였을 거야
한 달에 한 번씩 모였을 거야 책 읽는 시간 많이 가지려고
그때 읽어야 할 책 번호가 100번을 넘었던 거 같아
너는 모든 책을 통독했던 거 같고,
게으른 나는 숙제를 잘 안 했지.
서문만 읽거나 제목만 훑어보고 배짱 좋게 동아리에 참석했던 건
순전히 너 때문.
그 시절 너희들은
햄릿, 신곡,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 심취했고
난 詩를 많이 봤어. 현대문학, 월간문학 등에서 詩만 발라내어
따로 책으로 묶어서 봤지. 너처럼 좋은 시를 쓰고 싶어서
이 나이 먹도록 살면서 험한 일도 많이 겪고,
미친놈 짓도 참 많이 한 나, 차마 털어놓기 민망한
무렴한 짓 많이 하고 살았으면 이렇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건
니 덕분이라고 생각해. 詩힘을 알게 해 준.
지금도 너의 詩를 읽는다
내가 바른 사람 말 안 듣기로 유명해
뻥 잘 치고 헛짓을 많이 해 내 딸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미당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들어야 될 거 같아
1985년쯤인가 신춘문예 당선 인사겸
방송 프로그램 <詩人의 마을> 취재도 할 겸
남현동 예술인 마을 미당 선생님을 찾아뵈었는데 ,
당신이 생각하시는 진정한 시집은
죽은 후 관(棺) 위에 놓을 단 한 권 책이라며
자네도 그런 마음으로 詩를 쓰라고 하셨어
관 위에 올리는 마음으로 상재(上梓) 하라고,
그래서 난
내 관 위에 올려놓을 단 한 권의 시집을 꾸리고 있어
지금은 혼자만 몰래 읽지만
언젠가는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시집이 되길 바라면서,
그러면서 네 시집 펼쳐 공부한다.
1950년대 초반에 태어나 1969년에 내놓은 시집
네가 상재한 그 시집은 충분히 아주 충분히
관 위에 올려놓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야
세월이 무지막지하게 많이 흐른 탓에
너는 네 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고
만약에 없다면 바람결에라도 부치고 싶어.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