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몸값.원고료
모든 원고료에는 눈물이 반
오늘은 <라디오 작가 되기 – 원고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모든 원고료에는 눈물이 반이라는 것을요. 등 비빌 언덕이 있으면 모를까 글 쓰는 거 하나 믿고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기가 절벽 양쪽에 매달아 놓은 외줄 타기처럼 힘이 듭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기가 상존하기에 몸에 쥐가 나도록 용을 쓰는데요. 이 맛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라디오 원고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제가 처음 받아 본 <글 값> 얘기를 좀 할께요. 1984년 신춘문예에 도전한 건 순전히 상금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신발공장에서 구두 밑창 붙이는 일을 했습니다. 본드 냄새에 절어서 받은 한 달 월급이 십여만원 정도로 기억하는데요. 그해 11월 신춘문예 공고를 본 겁니다. 시와 시조 상금이 70만원. 마음이 크게 동했습니다. 신발공장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려면 두세달은 걸릴텐데 70만원이면 애들 둘 석 달 밥값은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신춘문예 시조 부문 출품작이 5편 이내. 동아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중앙일보를 겨냥해 그해 11월 30여편의 시조를 썼습니다. 죽자하고 덤볐던 거 같습니다. 그렇잖아도 밥줄에 허덕여 날카롭기 짝이 없는 제가 10살 5살 어린 것들한테 한 짓을 생각하면 지금도 칼에 베인 듯 아픕니다.
불로소득이라고요?
1984년 12월 크리스마스 이브 날 중앙일보 임재걸 기자의 전보를 받았습니다. 당선 소감을 써서 서소문 중앙일보 문화부로 오라고요. 생전 처음 신문사에 가서 ‘사진을 찍히고’ 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70만원 거금이 손에 들어온다는 생각과 당선 소감에 쓴 대로 ‘미력하나마 우리 시(詩) 문학사에 힘을 보태겠다’는 각오가 중첩되어서 시상식 날까지 잠을 못 이뤘던 것 같습니다. 신춘문예 시상식은 거창했습니다. 교과서에 배웠던 레전드 작가분들이 나오셔서 축하의 말씀을 아끼지 않았고 뒤풀이 자리도 성대했습니다. 중앙일보 근처 <남강>이라는 일식집에서 뒤풀이를 했는데 저는 마음껏 즐기지를 못했습니다. 상금 때문에요.
70만원을 받으면 새로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이렇게 저렇게 알뜰하게 써야겠다 계획을 다 짜놨는데 세금으로 30%가 잘려 나간 겁니다. 계획이 틀어지자 심란한 마음에 안주도 없이 술만 들이켰고 쉽게 취해버렸습니다. 누구한테 따지는 걸 잘못하는 제가 그날 정신이 어떻게 된 건지 상무님인가를 붙잡고 “왜 세금을 그렇게 많이 떼냐?” 따졌습니다. 선한 눈빛에 당당한 풍채를 지니신 상무님이 “불로소득이라서 그런 겁니다. 원래 상금 세액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요”라면서 조근조근 설명해주셨는데요. 이 불로소득이란 말에 정신줄을 또 한 번 놓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상황이 마무리됐는지는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상무님은 정해진 원칙을 친절하게 알려주셨을 뿐인데 제가 오버한겁니다.
불로소득은 말 그대로 일하지 않고 받은, 그러니까 노동 공급을 통해 얻은 수입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젖 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노동을 했는데 불로소득으로 치환됐던 경험은 제게 좋은 밑거름이 됐습니다. 다음 날 술이 깨니 상패가 비로소 보였고, 불로소득으로 치환되지 않을 원고를 쓰겠다는 다짐이 꼬리뼈에서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랐습니다.
첫 라디오 원고료
1985년 신춘문예에 당선하자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오더라고요. KBS와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당선 후 두 번 출연한 방송이 모두 KBS였습니다. 하나는 임성훈 왕영은씨가 MC를 맡은 TV 프로그램 <생방송 오늘>인가 그랬고 또 하나는 KBS 라디오 <안녕하세요. 황인용 강부자입니다>였습니다. <안녕 황.강>에 사연을 보내 상품을 여러번 받아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황인용.강부자 선생님이 초면 같지가 않았습니다. 신춘문예 응모 동기와 살아가는 이야기, 시인으로서 앞으로의 각오 등을 이야기했는데 평소 저답지 않게 말을 좀 잘했던 것 같습니다. 제 차례가 끝나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오니 PD가 방송 끝나고 얘기 좀 하자며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를 붙잡은 이유는 “혹시 방송 원고 써보지 않으실래요” 였습니다. 순간 “방송 원고 방짜도 모르는데 PD 제안을 받아 말아” 고민이 됐지만 따질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속마음을 감추고 원고료가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이게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PD는 “한 달 원고료가 90만원이다. 현재 있는 작가와 반반 나눠서 집필하게 된다. 지금 1월이니 3월 개편 때까지는 공동 집필을 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좋았던지 숨이 턱 막혔습니다. 그런데 당장 수락하면 모양 빠지는 거 같기도 하고 방송 원고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아야겠기에 “방송 원고를 주시면 읽어보고 할 수 있을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했지요. PD는 두말하지 않고 방송 원고 한 보따리를 주더군요. 그때는 200자 원고지에다 방송 원고를 쓸 때라 1달 치 원고가 작은 이불 보따리만 했습니다. 3일 뒤에 전화를 드리겠다고 했는데 못 참고 이틀 만에 하겠노라고 기별하고 1985년 1월 첫 원고료 40만원 중 세금 원천징수 3.3% 떼고 38만원 정도를 받았습니다.
라디오 원고는 좀 박한 편입니다
텔레비전에 비해서 라디오는 원고료가 좀 박한 편입니다. 포맷과 작업 분야가 달라서 원고료에 차이를 두는 건 당연하다 싶으면서도 섭섭하기는 합니다. 라디오와 병행해서 TV 특집도 가끔하는데요. 라디오 보다는 TV가 훨씬 품이 많이 듭니다. TV는 기획과 제작 기간도 길고요. 촬영 때마다 카메라. 조명. 음향 등 많은 스텝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합니다. 또 수십개가 되는 촬영 테잎을 편집실에 앉아 일일이 보면서 인서트 체크도 해야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제일 어렵습니다.
반면에 라디오는 좀 유연합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취재도 작가와 리포터 둘 셋 정도면 50분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작 기간도 TV에 비해서 훨씬 짧고요. 일일 구성 프로그램도 당일 원고 써서 당일 방송되고, 드라마도 대본만 완성되면 50분 드라마 제작이 대략 반나절 만에 끝납니다. 물론 편집 등의 과정이 있긴 하지만요. 이렇게 유연한 라디오 제작 과정이 저는 좋습니다. 다작(多作)이 가능하기 때문에요.
그렇다고 해서 라디오 작가 업무가 쉬운 건 절대 아닙니다. 기획, 자료 수집, 섭외, 취재, 집필, 인서트 체크 편집, 녹음. 생방 참여, 피드백 검토 등등으로 24시간 풀로 가동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꿈에서도 원고를 쓰는 일이 다반사니까요. 때로는 “이런 공력을 다른 데 쏟으면 경제적으로 더 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제가 공개하는 방송 원고료를 보시고 라디오 작가를 할지 말지 결정하시라고요. 아래 KBS. MBC. SBS 방송 3사 방송 원고료 지급 기준표 PDF 파일 첨부해놓았습니다. 이 지급 기준표 보시고 장르를 가늠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몸값 (라디오 빼고는 내가 결정해요)
아 참 방송작가로 일하면 가끔 외부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 옵니다. 저는 기업에서 원고 청탁이 오면 몸값을 아주 높게 부릅니다. 라디오 원고료를 만회하겠다는 생각으로요. 그래도 저를 쓰겠다고 하면 정말 열심히 하고 안하겠다면 마는 것이지요. 이렇게 배짱이 생긴 것도 후배 덕분입니다. 10년 전 쯤 “이번에 15분짜리 건설사 프리젠테이션 원고를 썼는데 300만원 받았다”고 했더니 후배 왈 “선배님 구력이면 500 불러도 되요. 라디오 원고료하고 비교하면 안되요. 초장에 몸값 올려 받아야지 안 그럼 계속 그렇게 가고요. 다른 작가들한테도 영향이 있어요” 하는데 그때 몸값에 대한 머리가 좀 트였습니다.
다음 회는요
라디오 작가 되기 다음 이야기는요. 장르에 따른 원고의 특성과 프로세스를 이야기해볼게요
다람쥐눈물버섯 - 밥줄 때문에
다람쥐도 밥줄 때문에 울었나 봅니다. 눈물은 물에 흘려보내고 피워낸 버섯. 다람쥐를 닮아보겠습니다.
(친구가 보내 준 버섯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