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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Jul 09. 2021

나의 삶, 여리고 어린 동시 (1)

속잎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지우고 쓴다.

이러다가 내가 흔적도 없이 지워질 거 같다. 

그러면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그렇게나 많이 

책을 팔고 공책을 찢고 노래를 버렸는데

또 나의 흔적이 돋아난다. 내가 버린 길 위에서 


운명이다. 버리지 못할 숙명이다.

그래서 브런치에 

<나의 삶, 여리고 어린 동시>를 기록한다.


사라질지 기억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

그냥 그저 그렇게 어제 있었던 오늘의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나의 어제와 오늘이 같고, 어제의 소원과 오늘의 소원이 같으니

어쩌면 내일도 마찬가지. 허나, 어린것들은 다르다   


날마다 새로 피는 어린것의 숨결을 씨줄로, 나의 부단한 하루를 날줄 삼아

시(詩)를 짜 보겠다 작심한 내가 고맙다. 


아직은 좋은 詩를 짤 재간이 없다. 

그래서 버리지 못한, 내 안에서 돋아난 <속잎>을 

무겁게 그러나 버겁지 않게 여기에 옮긴다. 

허균의 통곡헌(慟哭軒)에 세 들어서.  



속잎 - 박길숙


울타리 탱자나무

초록물 들기 시작할 때

맘 속에서 처음 뻗은 생각

첫사랑이 제일 서슬 푸르다

여린 듯 또 어린 듯 보여도

세상을 이긴다. 우리 맘을 사로잡힌다.


물보다 보드라운 유온이 

분홍 잇몸 사이로 이빨이 돋을 때 

몸속에서 처음 뻗는 패기(覇氣) 

처음 돋은 이가 제일 서슬 푸르다

누르면 없어질 듯 또 뭉개질 듯 보여도 

사람을 이긴다. 우리 맘을 사로잡힌다 


발원을 하고 싶은 데 산에 가지 못한 날. 공책에 연등을 단다. 안녕하신 부처님은 무심하다. 지침도 없이 혼자 무탈한 부처님이 밉다. 그래도 내 공책에 오셨으니 발원은 해야겠다. 저도 무탈하고 싶어요. 부자도 되고 싶고요. 거꾸로 세상을 보는 내가 우스운지 부처님도 한참을 배꼽빠지게 웃다 가셨다. 웃음 보시(報施)가 먹힌 걸 보니 부처님도 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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