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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Jul 27. 2021

양성평등 - 은서 가라사대

백번 맞는 말

어쩌다 양성 평등 공부


초등학교가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애들 방학 전에는 오전 시간이 번갯불에 콩 튀기듯이 바빴다. 새벽 4시부터 7시 30분까지 내 원고를 쓰고, 내 집에서 10분 거리인 딸네 집에 출근해 내 일과 애들 뒷바라지를 병행했는데 뒷바라지의 핵심은 ZOOM 수업 감시다. 딸이 출근하고 나면 학교 가는 녀석은 등교시키고 집에 있는 녀석은 ZOOM 수업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가 필요하다. 초6인 은서(손녀)는 자기가 알아서 척척 다하는데 초4 은준이는 수업 중에 천방지축 널뛰기를 한다. 장난감을 카메라에 슬금슬금 들이대 친구에게 자랑하고 카메라에 비친 친구 반려견에 훈수도 하고 그래서 선생님께 지적을 많이 받아 지켜 앉아 있어야 한다.      


딸이 주 5일 중 3일은 재택근무하기 때문에 이틀은 오전 내내 애들 수업을 같이 들어야 하는 상황,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ZOOM 수업과 E-학습터를 1년 남짓 어쩌다(?) 듣다 보니 새로운 기본(?) 지식이 많이 축적됐다. 우선 나를 닮아 셈을 잘못하는 애들하고 수학을 같이 푼 덕분에 내 계산 능력이 좋아졌다. 또 요즘 초등 교과서에 나오는 동시도 새롭게 알게 되고 특히 <양성평등> 수업이 귀에 딱 꽂혀 요즘 아이들 성평등 인식을 제대로 감지했다.  

                          <출처; 다음 이미지 국민일보 기사>


초등학교 교과서 삽화에 그려진 어머니는 가족의 식사 자리에서 심부름하는 사람으로 묘사됐다. 이 삽화가 부모 성(性) 역할의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자 어머니도 가족과 함께 즐겁게 식사하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양성평등 교육은 성별 관계없이 자신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핵심이다. 초등학교 양성평등 교육 내용을 보면 직업에서 성차별이 없어야 하고, 색깔 등으로 남녀를 구분하는 일도 삼가야 하며, 가사도 남녀가 모두 함께 참여하라는 거다. 그래야만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로 가고 ‘성차별 없는 개인의 발전이 대한민국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양성평등을 잘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밥 먹을 때 나도 모르게 옛날 사람 기질이 나온다는 거다. 가족들 모두 바쁘니 자기 밥은 해결하는데 항상 초4 은준이가 챙겨 먹지를 않아 밥때를 놓친다. 그럴 때마다 손이 모자라는 나는 은서한테 잔소리다. 은준이 좀 챙겨주라고.      


"은서야 니 밥만 푸면 어떻게 해? 은준이 것도 좀 챙겨 봐"

"은준이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왜 내가 챙겨야 하는데?"

"은준이는 어리고 남자애잖아"

" (완전 정색) 할머니 그건 아니지. 은준이가 남자라서 내가 밥 챙겨주는 건 성 차별이야 “

"가시내가 따박따박 말대답하면  못 써!"

"할머니도 여자면서 왜 남자 편을 들어? 할머니 같은 사람이 많으니까 남자들이 안 바뀌고 여자들이 고생하는 거야. 여자들이 화나면 누가 힘들겠어?"

"(유구무언)........ ”

“남자들이 힘들어지지. 그러면 싸우게 되고 가정의 평화가 깨지잖아. 나중에 은준이가 행복하려면 지 밥은 지가 챙겨 먹어야 해. 그래야 지 부인 힘든 거 알고 집안일 같이 할 거 아냐”

“알았으니까 오늘만 챙겨줘 봐”

“동생을 챙겨주라면 하겠는데 남자니까 챙겨주라면 나 안 해”      


은서 말에 100% 동감. 이럴 때 은서 편을 드는 게 맞는 일. 은준이는 결국 시리얼과 우유로 한 끼를 대신한다.


집안에 양성평등 부재? 빛 좋은 개살구!     


우리 남매 중에 부자(富者) 여동생이 있다. 시부모한테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데 재테크도 잘했다. 서울 은평구 역세권 아파트를 사고팔고 재건축 지역 빌라도 사서 이문을 꽤 남겼다. 또 백화점에서 식당을 꽤 오래 운영해 금융자산도 많다. 제부는 한술 더 뜬다. 자린고비도 그런 자린고비가 없다. 달러 통장 금(金) 통장도 있다는데 남매끼리 여행을 가도 10원 한 장 헐어서 밥 사는 법이 없다. 그러다 보니 체면치레는 여동생이 다하는데 어찌나 지 남편 눈치를 보는지 울화통이 터진다. 화는 나지만 부부지간 일이라 꾹 참는다. 또 편을 들었다가 나중에 더 큰 혹을 달게 될까 싶어 입을 닫고 있는데 어제는 막내한테 전화가 왔다. 불광동 언니가 이 더운 날 에어컨을 못 틀어 쪄 죽을 거 같다는 하소연 했다고.      


결국 불같은 내 성격에 그냥 있지 못하고 동생한테 전화해서 “넌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니 남편이 에어컨 안 틀면 네가 틀어! 환갑 진갑 다 넘어서까지 왜 남편 눈치 보고 사는데? 늬 딸도 너 같이 살면 좋겠냐?”라고 퍼부었다. “전원만 켜면 에너지 효율 1등급짜리 시스템 에어컨이 팡팡 돌아가는데 이 더위에 더운 바람 나오는 선풍기로 삼복더위 나는 정 서방도 등신이지만 네가 더 XXX다” 라는 말로 끝을 맺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경우가 내 동생 한 집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법정 드라마 <이명숙 변호사의 가정 법원>할 때 수많은 이혼 사례를 접했는데 부부 갈등의 반 정도가 양성 불평등에서 나왔다. 양성이 평등하지 않으니 생활비, 가사, 양육, 취미, 친족 관계 등 모든 것이 갈등이고 분란의 요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양성평등을 배우지만 가정에서 양성평등을 체험하지 않으면 도루묵이다. 자식은 부모를 은연중 닮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양성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이를 기반으로 <살림>을 해야지 균형이 깨지면 살림이 아니라 고사(枯死)로 귀결된다. 나는 초등학교 때 배운 양성평등이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되려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이 처한 <입장>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본다. 성인이 돼서 어느 날 갑자기 양성 불평등을 따지거나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 받아들이는 쪽도 마찬가지다. 연습으로 단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불만이 훅 들어오면 현명한 대처가 어려워 다툼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글쓰기의 하나로 편지 쓰기를 권한다.  


편지로 엿보는 조선시대 부부 양성평등      


부부가 주고받는 편지는 삶의 기록이자 세상사 어려움을 글로 푸는 즐거운 담소(談笑)다.      

  <출처; 다음 이미지 - 조선 시대 500년 전 부부 편지 국가기록원>


이 사진은 2012년 5월 20일 <부부의 날>에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조선 시대 500년 전 부부 편지다. 대전 유성구 안정 나 씨 묘에서 출토된 편지로 함경도 군관으로 나가 있던 남편이 고향에 있는 아내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분(粉과 바늘 여섯 개를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라는 내용이 담겼다. 나랏일이 바빠 집에 못 들르고 인편(人便)으로 편지와 함께 분(粉) 화장품과 바늘을 사서 보낸 듯싶다. 집에 다녀가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이렇게 애틋하게 전하는 것으로 봐서 부부가 서로 공대하는 양성평등 관계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 부부의 편지로 자주 회자되는 부부가 16세기 중반 홍문관 부제학의 벼슬에 올랐던 미암 유희춘(1513~1577)과 그의 아내 송덕봉(1521~1578)이다. 이 부부의 편지 내용을 변신원 교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가 잘 전해주고 있다.  인터넷 신문 기사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16세기 중반 홍문관 부제학의 벼슬에 올랐던 미암 유희춘과 그의 아내 송덕봉(1521~78), 이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를 보자. 유희춘은 “목민관으로 부임해 타지에 홀로 머무르는 3~4개월 동안 여색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알라”며 자랑하는 편지를 아내에게 보낸다. 16세기에 이런 편지를 보낸 것도 새롭지만, 아내의 답장은 심지어 뜻밖이다.      


“무릇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림은 성현의 밝은 가르침인데, 3~4개월 동안 독숙(獨宿)을 했다고 고결한 체하여 은혜를 베푼 기색을 하시오, (중략) 당신은 아마도 겉으로 인의를 베푸는 척하는 폐단과 남이 알아주기를 서두르는 병폐가 있는 듯하오. 나도 또한 당신에게 잊지 못할 공이 있소. (중략) 나는 옛날 당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묘를 쓰고 제사를 지냄이 비록 친자식이라도 이보다 더할 순 없다!”라고 하였소. 갚기 어려운 은혜란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오. (후략)“ 부인이 이렇게 조목조목 따지자 미암은 '부인의 말과 뜻이 다 좋아 탄복을 금할 수 없다!'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순순히 인정했다.      


미암은 참 자상하고 개방적인 남편으로 아내가 먼 길을 갔다 오면 다과를 준비해 10리 밖까지 마중을 나갔고, 아내의 몸이 아프면 휴가를 내, 곁에서 직접 간호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에 특별한 구경거리라도 있으면 친정에 머물며 함께 사는 딸을 데리고 나가 아내가 꼭 볼 수 있도록 했고 아내가 집 밖에 머물러야 할 일이 생기면 항상 아들이나 사위를 미리 보내 방을 따뜻하게 데워놓고 기다리도록 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그동안 아내가 지은 시와 글을 모아 <덕봉 집(德峯集)>이라는 문집을 내주기도 했다.     


미암의 일기를 보면 남편에게 순종하며 기죽어 사는 옷고름 씹어 무는 여인이 아닌 남편과 벗의 관계를 유지하며 시를 주고받을 정도로 호방했던 여인, 송덕봉의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뿐 아니라 가부장적으로 군림하는 권위적인 남편의 모습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이에 한참 모자라는 부부상이 얼마나 많은가. 조상의 멋과 기품을 느낄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이 분명하다.  - 변신원 교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출처; 다음 이미지  - 송덕봉 초상화


“목민관으로 부임해 타지에 홀로 머무르는 3~4개월 동안 여색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았으니, 갚기 어려운 은혜를 입은 줄 알라”며 자랑하는 남편의 철없는 편지에 “무릇 군자가 행실을 닦고 마음을 다스림은 성현의 밝은 가르침인데, 3~4개월 동안 독숙(獨宿)을 했다고 고결한 체하여 은혜를 베푼 기색을 하시오, (중략) 당신은 아마도 겉으로 인의를 베푸는 척하는 폐단과 남이 알아주기를 서두르는 병폐가 있는 듯하오. 나도 또한 당신에게 잊지 못할 공이 있소.”라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도 통쾌하다. 하지만 '부인의 말과 뜻이 다 좋아 탄복을 금할 수 없다!'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순순히 인정한 유희춘도 멋있다.      


요즘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면서 가사 분담으로 다투는 부부가 많다는 뉴스를 봤다. 양성평등 공부를 다시 해야 할 판인데 변신원 교수가 강조한 이 부분을 부부 양쪽 모두 함께 실천해 보면 어떨까 싶다.     


미암은 참 자상하고 개방적인 남편으로 아내가 먼 길을 갔다 오면 다과를 준비해 10리 밖까지 마중을 나갔고, 아내의 몸이 아프면 휴가를 내, 곁에서 직접 간호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라에 특별한 구경거리라도 있으면 친정에 머물며 함께 사는 딸을 데리고 나가 아내가 꼭 볼 수 있도록 했고 아내가 집 밖에 머물러야 할 일이 생기면 항상 아들이나 사위를 미리 보내 방을 따뜻하게 데워놓고 기다리도록 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그동안 아내가 지은 시와 글을 모아 <덕봉 집(德峯集)>이라는 문집을 내주기도 했다.


벗이 남해 미조항 풍경을 찍어 보냈다. 주위를 보면 양성평등 부부가 그리는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산과 섬 바다가 어우러진 어긋남이 없는 아름다운 풍광. 사람도 양성평등의 균형 감각이 있어야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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