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길숙 Aug 15. 2021

이명희 이야기 (3)

명희가 쓴 시는 언제나 맑음

지난 주에 주민등록상으로 명희 생일이 들어있었다. 인심 좋고 인성 착한 명희는 생일에 축하를 많이 받는다. 이 세상에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이 많다는 뜻.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명희에게 브런치를 빌어 사랑을 보낸다.



도시의 풍경은 자연스럽지 않다.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이 있고 가로수도 제법 모양이 나지만 눈길이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바빠서 그렇기도 하지만 본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어서 나무와 풀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공공장소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로수를 심을 때 그곳의 정체성과 이용객을 반영해 특화된 디자인을 구현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신의 한 수를 썼다 하더라도 자연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신의 한 수는 자연에 있기 때문이다.     


명희는 새벽 미명이 걷히기 시작하면 자전거를 타고 함평 상수도 정수장 옆 하천 둑길을 힘차게 달린다. 도시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하고 갈망하는 ‘루틴’, 정해진 좋은 습관이 명희 몸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배어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바람을 느끼고 하늘의 변화에 경외하며 하루 할 일을 스스로 기획한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는 좋은 것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 보낸다. 어제 봤던 풍경이지만 오늘 새롭게 느껴지면 ‘새로운’ 거다. 명희가 발견하는 새로움은 대개 들녘에서 제멋대로 자란 풀이다. 그여린 풀에서 피어난 작은 꽃이다. 명희는 자신을 스스로 ‘거목 천사’라고 칭한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키운 나무는 아무리 키가 크고 우람해도 거목(巨木)이라 부르지 않는다. 아름답다는 감탄사는 나올지언정 자연의 존엄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잡초가 무성한 토양에서 자란 나무들이 진짜 거목. 잡초를 어르고 달래며 농사짓는 명희가 요 며칠 사이에 보내준 카톡 메시지는 그 자체로 맑은 시(詩)다. 기교 없이도 아름다운 함평 천지 풍경처럼,



칠월칠석을 잊고 산 지 오래다. 계절의 변화를 오늘의 날씨 뉴스로 감지하다 보니 입춘(立春)에서 대한(大寒)까지 24절기도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명희가 칠석이라고 카톡을 보냈다. 칠석날은 1년에 단 한 번만 허락된 견우와 직녀의 상봉일. 엄마가 살림을 하던 어린 시절, 이날이 되면 견우직녀의 상봉을 축하하며 우리도 기쁜 날이 되기를 하늘에 빌었다. 밀을 빻아 전을 부치고 밀국수를 해서 이웃과 나눠 먹으면서 말이다. 명희는 옛 풍속을 잊지 않고 견우직녀의 애틋한 상봉을 축하하며 전을 부쳤고, 사진으로라도 함께 먹자며 잘 찍어 보냈다. 엄마의 추억까지 덧붙여서,




급히 쓰느라 맞춤법이 어긋나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겹다. 기교가 들어가 있지 않아 미원을 넣지 않은 음식처럼 담백하다. 세상의 모든 절창(絶唱)을 압도하는 맑은 시(詩). 덕분에 내 정신이 맑아졌다. 하여 종종 명희가 시를 보내주면 브런치를 통해 세상과 공유하려고 한다. 한 번의 교정도 퇴고도 없이 참말로만 시를 쓰는 너의 공명정대함. 너는 잡초와 함께 자란 '거목 천사' 맞아!


딸기 할머니를 위해 은서가 그렸다. 은서 맘에는 딸기 할머니가 같은 또래 소녀다. 언제나 꽃 청춘 이명희

매거진의 이전글 마도로스 박(가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