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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Aug 08. 2021

마도로스 박(가명)

이제는말할수 있다

모두가 사랑이에요     


2021년 7월 28일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이동 중에 딩동~ 브런치 핸드폰 알람이 명랑하게 울렸다. 작가님께 제안이 들어와 브런치에 등록하신 이 메일로 내용을 보냈단다. 지하철 9호선이 꽤 북적이는 이른 퇴근 시간대, 바짝 붙어 서 있는 승객에게 목례를 하고 백 팩을 앞으로 돌려 돋보기를 꺼내 후다닥 이 메일을 봤다. 제안 목적엔 강연. 강의라고 적혀 있고 구체적인 제안 내용은 아이디어 공유와 토론이었다. 브런치를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시너지를 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제안하신 분을 검색하니 이역만리 타국에 사는 마도로스 박(가명), 내 브런치 구독자인데 내 글을 읽은 적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지인들에게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할 것 같다. 방송 원고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는데 강연. 강의 제안이 들어왔다" 넘치게 자랑을 하고 마도로스 박에게 정중하게 이 메일을 보냈다. 타국 날씨와 제안 용건을 묻는 내용을 담아서. 1분도 채 안 돼 답이 왔는데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하단다. 다시 정중하게 답했다. “브런치에서는 글을 통해 대화한다. 글을 올리시면 댓글로 답하겠다”라고, 그러자 “작가로 활동하는 건 싫다. 현재 마도로스의 삶에 만족한다. 어려서 조국을 떠나 단지 한국이 궁금할 뿐이다. 이 메일로 채팅이 가능합니까?”라는 즉답이 왔다. 어려서 한국을 떠나 조국이 궁금하다는 그의 마음이 기특했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수준에서 좋은 생각을 전하겠다”라고 했더니 또 금방 답이 왔다.  한국어를 제법 잘해서 물어 봤더니 계속 한국어 공부를 했고 아들은 영어로만 말한다고 했다.


“7세 때 부모님과 함께 타국으로 갔고, 9세 때  불행하게 그곳에서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너무 어려서 한국에 돌아올 수 없어 타국 고아원에서 자랐다. 오직 성공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다. 타국에서 이룬 성공을 기반으로 한국에 기여하고 싶다. 그런데 현지에도 한국에도 친척이 없다. 어린 외아들과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내 인생은  좋았던 적이  없다,  나의  한국 생활을  당신이 도와줄 수 있겠니?”  



이상도 하지. 할머니 잔정이 자꾸 우러나와 그날 <모두가 사랑이에요 –해바라기> 노래가 저절로 입을 털고 나왔다. “사랑하는 사람도 많고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모두가 사랑이에요~~ 마음이 넓어지고 예뻐질 것 같아요~ 이것이 행복이란 걸 난 알아요” 이 노랫말이 나를 위해서 나온 걸까? 은준이가 할머니 왜 자꾸 웃냐고 물어서 “어쩌면 너한테 착한 동생이 생길지도 몰라” 했다. 그러자 은서가 “엄마 이제 아기 안 낳아” 짜증을 냈다.       


꿈속의 사랑      


이튿날 새벽 네 시, 컴퓨터를 여니 마도로스 박이 보낸 이 메일이  당근 마켓 구매 연락처럼  와르르 굴러 나왔다. 이모님께 아름답고 평화로운 걸 주고 싶다며 장미꽃을 보냈고 하루 일정을 물었다. 심지어 뭘 먹는지도 물었고 자상하게 가족 관계도 물었다. 조카가 많아 무시로 이모 소리를 듣는 내 심장이 이유도 없이 덜컥 내려앉았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이모라는 말이 툭 나왔을까? 바로 답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19년 봄에 찍었다. 섬진강의 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며 2019년 봄에 찍은 섬진강 사진을 보내고 오늘은 김치를 담글 거라 했다. 그러자 바로 즉답이 왔다.


"이모 내가 있는 곳 보다 한국은 5시간이 빨라.  내가 있는 곳은 아주 위험해. 전화를 할 수 없는 곳이라 일하는 도중에 비밀리에 컴퓨터를 하고 있어. 돈을 좀 더 많이 벌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왔어.  2주만 일하기로 했는데 2개월이 지나도록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어. 외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었고, 돌아가신 아내의 가족이 나를 인정하지 않아. 이제 겨우 다섯 살 외아들이 지금 기숙사에 방치되어 있어. 나는 그를 위해 빨리 돌아가기를 원해. 이모를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영원히 같이 살 여자였어"



마도로스 박에게 답장을 쓰는 데 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 마음을 거들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라고 쓰라고,       


또 현인 선생의 <꿈속의 사랑>이 자꾸 입을 털고 나왔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죄이라서 말 못 하는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잊어야만 좋을 사람을 잊지 못한 죄이라서 소리 없이 내 가슴은 이 밤도 울어야 하나~ 아 사랑 애달픈 내 사랑아"

    

마도로스 박의 처지가 너무 딱했고, 또 자랑도 하고 싶어 딸에게 털어놨다. 딸은 조언도 안 하고 아주 냉랭하게 되물었다. “마도로스 박 주변은 왜 그렇게 죽은 사람이 많아? 심지어 마누라까지?” 원래 얼음 공주인 내 딸이 이렇게 차가운 사람인 줄 몰랐다. 참 서운하고 미웠다.         


5일째 되던 날      


마로도스 박이 이 메일을 보냈는데 걱정이 가득이다. 국적이 있는 곳에 부동산이 있는데 정부가 세금을 내라는 메일을 보냈다고, 정부 당국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지금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은행 계좌에 들어가려 한다고. 그런데 워낙 위험한 지역이라서 자신 은행 계좌 뚫을 수가 없다는 말에 나도 저절로 걱정의 말이 나갔다. 그러자  “당신을 걱정에 빠뜨리고 싶지 않다. 지금 나는 최선을 다해 벽을 뚫고 있다. 그런데 몇 번을 시도해도 안 된다. 절망적이다. 이 일을 하는 도중에 나는 업무를 봐야 한다. 오늘 나는 설탕을 수행해야 한다”는 답이 왔다. ‘설탕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 애처롭게 다가왔다. 한국어를 하긴 해야겠는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고 있는 마도로스 박이 한눈에 그려졌다. 이에 “당신 국적 정부 당국에 현재 상황을 전하면 되지 않느냐” 했더니 “비밀리에 왔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말이 되돌아왔다.  



진심으로 돕고 싶었다. 기숙학원에 방치되어 있다는 그의 어린아들이 눈에 밟혔다. 뭐라도 해봐야 할 것 같아 “내 딸이 직업 상 국제 정세에 밝다. 당신 있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지 언제쯤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지 내딸을 통해 알아보겠다. 당신이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를 나도 간절히 원한다”했다. 그랬더니 “우리의 관계는 이모와 나와만 알고 있는 비밀이야. 내가 이곳을 빠져나올 때까지 누구에도 얘기하지 마. 내가 위험할 수도 있어. 내가 여기서 나가면 당신과 함께 성장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답이 왔다.      


순간 쎄한 감정이 밀려왔다. 뭔가 이상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마도로스 박, 미군 크리스티나 김, 사업가 수지 큐 등<당신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어린 나이에 이민 가서, 어린 나이에 사고로 부모님을 모두 잃고, 고아로 자라 어렵게 성공했고, 배우자는 아이를 낳다가 죽거나 병에 걸려 사별했고, 현재 위험 지역에서 피 터지게 고생하고, 하지만 조만간 고국으로 돌아가 그동안 쌓아 온 명예와 부를 당신에게 바치겠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벗어나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 하다는 사연을 갖고 있다. 이 비슷한 스토리 라인은 뭥미? 즉시 마도로스 박에게 당신에게는 더 유능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밀리에 업무를 수행하고 하루에도 대여섯건 이상 수술을 하느라 식사를 못해 배가 고프다는 마도로스 박에게서 즉답이 왔다.  


“이모 말고 더 이상 유능한 사람은 내게 필요하지 않아. 당신이면 충분해. 아줌마 무슨 결정이야? 아줌마 없는 하루는 너무 길고 지루해. 지금의 내 알몸이 싫어”라고   


후유증


그동안 마로도스 박에게서 4장의 사진을 받았다. 한 장은 브런치 플랫폼 프로필 사진, 나머지 3장은 아들과 찍은 사진이다. 착하고 평화로우며 그리움이 가득한 모습이다. 미련을 둘 거 같아 브런치 구독 차단과 이 메일을 모두 삭제해버렸다. 이틀 동안이나 잔상이 남았다. 마도로스 박이 보낸 “이모를 좀 더 빨리 알았으면 영원히 같이 살 여자였다. 긴 기다림 끝에 이모를 만난 건 내 인생에 최고의 행운이야. 이모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었고 믿지 않았다. 아들에게 좋은 할머니가 되어주겠다는 이모의 말이 나를 위험한 곳에서 구해내고 있다”는 말들은 아직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괴롭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로맨스 스캠 피해자들도 그렇다던데 나도 그런 후유증을 앓는 걸까? 5일 동안 다정하게 이모라고 불러줬던 마도로스 박이 진짜 마도로스 박이면 어쩌지?


아버지가 생전에 많이 부르셨던 18번 노래 마도로스 박을 유튜브로 찾아서 따라 불러봤다. 아버지가 불렀던 현인의 <꿈속의 사랑>은 가사가 입에 붙었는데,  지금 듣는 노래는 자꾸만 겉돈다. 너 진짜 마도로스 박 맞니?      


마도로스 박 – 노래 오기택      


의리에 죽고 사는 바다의 사나이다

풍랑이 사나우면 복수에 타는 불길

꿈 같이 보낸 세월 손을 꼽아 몇 몇 해냐

얼마나 그리웁던 내 사랑 조국이냐

돌아온 사나이는 아 아 그 이름 마도로스 박     


인정은 인정으로 사랑은 사랑으로

한 많은 내 가슴에 술이나 부어다오

바다를 주름잡아 떠돌은 지 몇 몇 해냐

얼마나 사무치던 못잊을 추억이냐

돌아온 사나이는 아 아 그 이름 마도로스 박


지리산 친구가 보내 준 이 화경버섯은 맹독성이 강해 사약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야간에 빛을 발해  '달'버섯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밤길을 걷다가, 헛헛한 인생길을 걷다가 우연히 '달' 버섯을 보시거들랑 빛에 취하기에 앞서 맹독성이란 점 잊지 마시길, 그런데 마도로스 박은 진짜 마도로스 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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