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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Aug 28. 2021

이명희 이야기 (5)

언니 사람들이 흉 보믄 으짜까?


명희에게 생긴 엉뚱한 걱정     


요즘 명희 이야기를 브런치에 올리니 명희가 걱정이 태산이다. 특별한 것도 없고 내세울 만한 그 무엇도 없는 시골 아낙네의 그렇고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자꾸 드러내면 흉을 잡힐 거라며 올리지 말라고 한다.  


동생은 이리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대한민국 보통 사람 중에 자신이 세운 계획을 온전하게 실천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자신만의 단순화된 행동 패턴을 반복하는 리추얼을 통해 에너지를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이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선 나부터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다.    

  

허나, 명희는 다르다. 새해 첫날을 맞기도 전 한 해 농사를 계획하고 매달, 매일, 매 순간 집중해서 그 많은 일을 다 해낸다. 농사는 백 가지 일을 모두 잘했어도 한 가지 일이 어긋나면 전체가 어그러질 수 있음을 명희는 잘 알고 있다. 농사는 머리로 짓는 게 아니다. 가슴으로 짓는다. 농사 지식만으로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다. 머리에 있는 지식이 심장으로 내려왔을 때 자연에 순응하여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요즘 대세인 임영웅이 미스터 트롯 결승전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만족한다고 했다. 명희도 마찬가지다. 새벽에 눈 뜨면 몸단장을 한 후 하루를 시작한다. 명희의 몸단장은 거창한 게 아니다. 세수하고 로션 바르고 “명희야 오늘 잘해보자! 잘할 수 있어” 다짐하는 것.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함평 들녘을 돌며 바람, 흙, 햇살, 물, 꽃들에 고맙다 인사하는 것. 이것이 명희의 진정한 힘,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리추얼이기에 나는 명희를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다.


12호 태풍 '오마이스'를 대하는 명희의 자세


농사꾼에게 제일 무서운 건 태풍이다. 1년에 한반도를 찾는 태풍이 대략 3~4개는 된다. 지난 20일 발생한 12호 태풍 '오마이스'는 주위를 어슬렁거린다는 뜻의 이름처럼 동생이 사는 함평에도 많은 비바람을 뿌렸다.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處暑)가 돼서야 뒤늦게 찾아와 남부지역에 상륙한 ‘오마이스’는 위력이 대단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남부지역이 침수 등의 피해를 많이 입었다.   동생이 논으로 밭으로 비닐하우스로 동동거리며 뛰어다닐 걸 생각해서 전화도 안 해 봤다. 그런데 동생이 먼저 태풍이 무사히 지나갔다는 카톡을 보냈다.  

 


이 카톡에 이어 명희가 보낸 사진 3컷. 태풍이 지나간 하늘은 평화롭고 땅 위의 들꽃은 새초롬하니 찬란했다



옛날부터 추석 전후해서 오는 태풍이 무섭다고 했다. 바람과 비가 맹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희가 얼마나 조바심을 낼지 그 마음이 손에 잡히는데 명희는 평화롭다. 쌀 한 톨에도 우주가 있음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역경이 조바심으로 해결된다면 백번이고 천 번이고 조바심을 쳐야 맞는 일, 하지만 조바심은 아주 쓸모없는 에너지 소모다.      


명희가 그렇듯 이 땅의 농부는 조바심을 치기에 앞서 최선을 다한다. 하늘을 나는 새가 벌레 한 마리를 잡는 데도 혼신을 다하듯이 그렇게 말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가을에 태풍이 1개 정도 찾아올 거라고 한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이 또한 장담할 수는 없는 일 일터. 아무리 영농기술이 발달해도 농사는 하늘이 짓는 법. 밥 한 그릇에 담긴 농부의 애타는 마음을 명희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 본다.


브런치 이명희 이야기를 쓰고 있는 도중에 명희가 아침 인사를 한다. 명희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핀 구름이 우주의 왕자 같다고 해서 오늘 보내온 사진에 보태서 올린다. 늘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명희의 리추얼은 오늘도 굿! 함평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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