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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Sep 26. 2021

이명희 이야기 (6)

힘은 들어도 딸기는 토경(土耕)이 달고 맛나

딸기는 새끼 다루듯이      


농작물은 주인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주인이 정을 얼마나 주느냐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지니 부지런한 농사꾼은 밥 먹을 새도 없이 논밭으로 달려간다. 명희도 얼마나 부지런한지 풀이 나기도 전에 김을 맨다. 아예 풀이 자리를 잡지 못하게 싹이 나기 전에 대비하는 거다. 우리 속담에 “소농(小農)은 풀을 보고도 김을 안 매고, 중농(中農)은 풀을 봐야 김을 매고 대농(大農)은 풀이 안 나도 김을 맨다”는 말이 있다. 부자의 덕목을 이처럼 명쾌하게 설명한 속담은 또 없을 것 같다. 세상에 게으른 부자는 없다. 이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게으른 부자가 설령 있다 하더라도 오래 못 간다. 명희를 보면 큰 농사꾼의 DNA를 타고났다.      

전에도 얘기했듯이 명희의 하루는 새벽 4시 무렵에 시작된다. 요즘은 딸기 아주심기를 하는 시기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판,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일꾼들 먹을 아침을 장만한 뒤 연로하신 아짐(아주머니)들을 모시러 간다. 



명희가 첫새벽에 장만한 일꾼들 아침 먹거리가 군침이 돈다. 오랫동안 명희와 손을 맞춰 일하신 분들이 손발이 착착 맞고 소통이 잘 돼서 편하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농촌에서 힘든 일하는 걸 싫어하고 코로나로 외국인 근로자 구하기가 힘든 때문이기도 하지만 딸기는 예민해서 애기 다루듯 해야 해서 딸기를 잘 아는 고참 일꾼들을 모신다. 경험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 한 가지 일을 경험하지 않으면, 한 가지의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고 하는데 명희랑 같이 딸기를 키우는 아짐들은 모두 딸기 박사다.     


코로나19 타격은 컸지만  

   

명희네 농사 규모는 꽤 크다.  딸기 하우스는 200평짜리 모두 11동, 양파는 육모장을 포함해서 13동 등등 모두 합해 하우스가 25동이나 된다. 정을 주고 애지중지 키운 딸기는 코로나 발생 이전에는 주로 어린이 집과 초.중.고 학교 급식에 많이 나갔다. 자라는 아이들과 청소년이 먹는 거라 친환경을 고집한다. 그런데 코로나로 학교 급식이 끊기고 줄다 보니 판로를 바꿔 요즘은 공판장과 마트로 많이 나간다.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시대가 열린 2020년 봄, 명희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어린이 집과 학교가 아예 문을 닫고 학교 급식이 전면 중단되면서 명희는 세도 너무 센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명희는 어린집과 초. 중고등학교로 보낼 딸기를 쌓아두고 발을 동동 굴렀다. 딸기를 팔 수 있는 곳을 찾아 기를 쓰고 판로를 개척함과 동시에 무조건 나눔을 실천했다. 딸기는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따야 싱싱함이 오래간다. 코로나19에 판로가 막혀버린 딸기를 꼭두새벽부터 따서 이곳저곳으로 실어 보내고 또 직접 실어 날랐다. 딸기의 특성상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탱글탱글 싱싱할 때 맛보라고 촌각을 다투며 나눔을 했다. 농사지은 걸 갈아엎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 더 놀랄 게 없었던 때, 명희는 자식처럼 키운 딸기를 누군가 먹어주는 것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참 좋은 명희는 그 어떤 경우든 절대 혼자 가지 않고 주변을 살펴 더디더라도 함께 간다. 


딸기는 땅에서 커야 맛나다네      



명희네 딸기는 땅에서 자란다. 딸기는 땅에서 키우는 토경(土耕)이 있고 높은 받침대에서 자라는 수경(水耕 )이 있다. 받침대 위에서 딸기를 키우면 허리를 구부리지 않아돼 일하기도 쉽고 토양재배에서 오는 탄저병과 노균병 등이 현저히 감소된다. 그럼에도 명희는 토경(土耕) 재배를 고집한다. 명희 말로는 모든 작물이 땅에 커야 자연의 섭리에 맞는다는 거다.    

  

수경 재배와 달리 토경 재배는 손이 많이 간다. 우선 밭을 일구는 것부터가 고된 작업이다. 딸기를 심기 전에 친환경 퇴비로 밭 힘을 길러놔야 한다. 그리고 딸기 묘는 생육 단계서부터 엄격하게 품질관리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 난다.      


딸기 육묘 기간은 보통 3월~9월까지 6개월 정도가 소요되는 걸로 알고 있다. 3월 중순쯤 어미 묘(苗)를 심으면 뿌리가 퍼지고 거기에서 꽂대가 나온다. 5월 하순까지 꽃대 및 런너는 제거하여 어미 묘를 튼실하게 키운다. 이렇게 키우면 아들 묘가 나오는데 튼튼하고 좋은 아들 묘를 얻기 위해서는 자 묘 사이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아들 묘를 밭에 옮겨 심을 때까지 탄저병에 걸리지 않도록 세심한 병해충 관리가 필요하다. 친환경 농사를 고집하는 명희의 고생은 농사에 문외한 나로서는 설명이 불가하다.      



요즘 명희네는 여름 한 철 애지중지 키운 아들 묘를 모두 밭에 옮겨 심어 가꾸는 중이다.  한 뿌리 한 뿌리 일일이 정성스럽게 땅에 심은 딸기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는 것이 관건. 벼농사도 짓고 양파 농사도 짓는 명희는 딸기 농사가 제일 어렵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토경재배를 고집하는 이유는 땅에 뿌리내리고 자란 딸기가 당도도 높고 과육이 탱글탱글 맛이 좋기 때문이다.  비옥한 토양에서 명희의 정을 먹고 자랐으니 맛난 맛이 배가 되는 건 당연한 일, 11월쯤이면 발갛게 물이 들기 시작하고, 착색이 약 80% 진행되었을 때 수확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명희가 얼마나 많이 딸기에 정을 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손주 사랑에 푹 빠진 명희      

 

손주 자랑은 돈 주고 한다는 말이 있다. 돈을 내면서까지 손주 자랑을 하는 까닭은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기 때문일 터. 이번 추석에 장마철에 호박 크듯 쑥쑥 자라는 손주들이 함평 친할머니 집에 와서 할머니 심장을 훔쳐 간 모양이다. 코로나 때문에 서울 사는 아들은 오지 말라고 하고 광주 사는 아들만 불렀다고 한다.

서아가 추석 쇠고 집으로 가면서 차를 타기 전에 할머니 할아버지 딸기 삼촌 곡성으로 놀러 오랬다는 말에 온 식구가 감동을 먹은 모양, 자랑이 늘어진다. 서아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카톡에 적는 명희의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찼다. 명절이면 가족 간의 갈등이 심해지는 집도 있다던데 명희네는 행복이 차곡차곡 쌓인다. 행복한 사람은 특별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을 캐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고 전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명희는 거목 천사, 뽐내지 않은 들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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