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생에게 보내는 편지

by 박길숙

淑아


우리가 벌써 노인 축에 들었다.

너랑 나랑 열여섯 살쯤인가 이런 얘기를 했어

오래 살지 않겠다고. 마흔이 넘으면 징그러울 것 같다고.

그때 너는 33세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난 마흔 살까지만 살 거라고 했어

네가 33세라고 못 박은 건 김소월 시인 때문이었을 거야

그이가 그 나이에 세상을 떴으니.

그리고 내가 마흔이라고 콕 집어 말한 건

전혜린 때문이었어. 그녀가 40에 생을 마감했으니

나도 그만큼만 살아야 아름다울 것 같아서.


그런데 그 나이를 훌쩍 지나

지금 우리는 여전히 건재하고 팔팔하다.

자연 나이로는 '노인'이지만

마음 나이로는 여전히 서른셋. 마흔에 살고 있는 우리

淑아. 달래 마늘처럼 작고 귀여운 淑아.

지금도 잘 우는지 궁금하고

너에게 신세계를 선물했을 분신도 참 많이 보고 싶다.


건강 잘 챙겨서 곱게 늙어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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