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같은 54년 전 이야기
선생님 그리운 선생님
박정애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나이가 들기 전에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세월이 54년이나 흘렀네요
중2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은 저를 기억하시 못하실 거예요
그런데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선생님이 또렷하게 떠올라요
항상 치마저고리를 입으셨고 살짝 드러난 종아리가 애잔했어요
작달막한 체구에 엄청 엄하셔서 말 걸기가 무서웠는데도요
어린 마음에 우리 선생님이 조금만 더 살이 찌시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지요
국어를 가르치신 선생님은 칠판 글씨를 참 멋지게 쓰셨어요
눈에 쏙 들어오게요. 또 설명하실 때는 귀에 딱딱 꽂혀서 제 것이 되었답니다.
국어 과목만 미치게 좋았던 중2 때 저는 삶이 참 덧없다 생각했어요
어쩌면 영어 수학 때문이었는지도 몰라요. 영어 수학만 아니면 1등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어 수학 때문에 꼴찌를 못 면하니 학교 가기가 정말 싫었어요
학교가 가기 싫은 이유는 또 있었어요.
저 어렸을 때는 왜 그렇게도 엄마 아버지가 많이 싸우셨는지 집에서는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엄마 아버지는 서로 옳다고 싸우고 동생들은 울어대고 머릿속이 늘 헝클어진 수세미다 보니
집만 벗어나면 인간답게 살 거 같은 생각이 펄펄 끓는 용암으로 매일 솟구쳤어요.
국어 시간 말고는 어떻게 하면 가출에 성공할까 이 생각뿐,
영어 수학 과학 시간에 멍 때리다가 날아오는 분필을 수없이 맞았습니다.
그다음 순서는 교실에서 쫓겨나 복도에서 손을 들고 있는 것.
너무 잦은 일이라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선생님께서는 제가 안쓰러웠나 봐요
다른 선생님 같으면 반 수준 떨어뜨린다고 야단치셨을 텐데 제 손을 잡아주셨어요
무릎 꿇고 죽은 듯이 앉아 있는 제 눈높이 맞춰서 몸을 낮추시고요.
그날 엄청 울었어요.
학교에서는 못 울고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펑펑 울면서
왜 나는 사람이 아닐까 자책했어요
그때가 이 맘 때 스승의 날이었는데요.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정확하게 어디서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은데 브로치를 샀어요
돈이 없으니 비싼 건 못 사고 아마 500원 정도였을 거예요.
선생님께서 저고리 옷고름 대신 브로치로 옷섶을 여미셨기에 브로치를 샀는데요
브로치가 너무 형편없는 싸구려라 드리면서도 솔직히 민망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는 제가 드린 브로치를 매일매일 차고 오셨어요
제가 중학교 3학년이 되기 전까지요. 선생님을 보면서 저는 조금씩 천천히 바뀌었습니다.
제가 잘할 수 있는 국어를 냅다 들이 파면서요
53년 전, 중학교 3학년 스승의 날 무렵 <코리아헤럴드> 신문사에서
전국 중고등학교 학생 대상으로 시와 산문을 공모했는데 그때 제목이 <선생님>이었습니다.
아무런 의욕도 없던 제가 선생님을 생각하며 시를 써서 응모했고 시 부문 장원을 했어요
당시 심사위원은 어효선 선생님 박목월 선생님이었어요.
제게 상장을 주신 분은 국무총리를 지내셨던 대한적십자사 최두선 총재셨고요
전국 공모전에서 장원을 하니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고 백일장이란 백일장에는 모두 내보냈습니다.
수업시간에 백일장 대회 가야 한다며 선생님들이 불러내시면 참 의기양양했어요.
그렇게 해서 저는 <사람>이 되었어요.
글 써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이 되자 선생님이 사무치게 보고 싶었어요.
한 20년 전쯤일 거예요. 선생님이 뵙고 싶어 전북 교육청에 부탁해서 선생님 연락처를 받았어요
전화를 드렸더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신 선생님은 냉랭하게 전화를 끊으셨어요. 당연하지요.
믿을 사람 없는 세상인데 낯선 전화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무서웠겠어요.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박정애 선생님 고맙습니다.
현생에서는 선생님을 뵙지 못하더라도 뵈올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선생님께서 무릎을 낮춰 제 손을 잡아주시던 때 제게 주신 '참 따뜻했던 손길'과 '알 수 없는 향기'
이제라도 나눠볼 생각입니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 고맙습니다. - 2021 스승의 날에 제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