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밥에 바치는 눈물
함평 동생이 쌀을 보냈다. 함평에서 온 쌀은 밥의 본질을 담고 있어 참으로 귀하다. 쌀은 어떤 경우에도 혼자서 생산할 수 없다. 수많은 힘의 연합과 교류가 있어야만 비로소 밥상에 밥이 오늘 수 있다. 명희가 한 톨 쌀을 위해 논으로 내달린 시간을 알기에 쌀을 받고 나니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난다.
밥을 먹는 건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한 끼 밥을 쟁취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나를 구속한다. 생존과 자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절박하고 절실하게 생존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감히 나는 내 밥이 위대하고 말한다. 밥에서 밥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생존 문제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김지하 시인의 말대로 밥이 하늘이기 때문이다.
농부는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논에 땀과 눈물을 바친다. 노동자는 밥과 빵을 얻기 위해 일에 땀과 눈물을 바친다. 땀과 눈물을 바치면서 우리는 부르짖는다. 쌀과 밥, 빵을 얻는 일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고. 양성우 시인의 말마따나 시험에 들지 않고 온전히 나의 땀과 눈물로 얻어진 밥은 하룻밤이면 똥이 되어 나온다. 하룻밤 새 똥으로 나올 밥 한 끼를 위해 자유보다 생존을 택한 이들의 바쁜 발걸음은 앞뒤를 재지 않고 달린다. 달리는 지하철에서도 달리고 차를 몰고 가면서도 달린다. 생존이 미루면 안 되는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급하다. 양성우 시인도 <밥을 위하여> 울부짖었다.
쌀은 삶과 희망의 상징이다. 생존의 문제가 급선무인 ‘모든 우리’가 쌀과 밥을 삶의 희망으로 받아 들일 수 있기를, 그리고 배부른 사람들이 밥이 하늘임을 알아주기를. 명희가 보내준 쌀포대에 기대어 하늘에 외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