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길숙 Dec 17. 2021

실안개

울 엄마 오셨다

새벽에 컴퓨터를 켜니 오늘 날씨는 실안개란다. 엷게 무리진 실안개는 어디에 놓아도 아귀가 딱딱 맞아 모난 데 없이 잘 스며든다. 모난 돌인 나는 실안개가 부럽다. 돌도 스며들어 아귀가 잘 맞으면 천년 세월을 보듬는 튼튼한 돌담이 되는데 나는 아직 멀었다.  

오늘 찾아온 실안개가 돌담을 이룰 것 같아  창문을 열고 손 내밀어보니 실 안개가 내 손가락 사이로 흘러간다. 만져지는데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은데 만져진다. 울 엄마다. 문득 평생을 실안개로 아스라이 젖어서 사신 울 엄마 볼살이 만져진다. 울 엄마 평생소원 중 하나는 몸무게가 40kg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였다. 살집이 좀 두툼하기를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군것질도 잘하시고 진지도 내가 원하는 만큼 드셨는데도 몸집이 종잇장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볼살은 토실해서 증손주들이 할머니 얼굴을 자주 주물러댔다. 어린이날에 유치원에서 받아 온 불빛 왕관을 씌우고 좀 웃어보라고 증손주들이 보챘다. 하지만 왕관이 낯선 할머니의 웃음은 자꾸 살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사실 엄마와 나는 정치적 성향이 달라 합이 좀 안 맞았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박근혜 걱정을 하셨고 나는 그런 엄마를 무지막지하게 타박했다. 그 어떤 말씀을 하셔도 이해를 했는데 박근혜 얘기만 나오면 송곳이 됐다. 이 문제 빼놓고는 다툴 일이 없었다. 종교가 달랐어도 우리 모녀에게 종교 전쟁은 없었다. 엄마가 개종한 직후 교회 나가자는 말만 하지 마시라고 딱 잘 말했다. 엄마는 끌탕을 하면서도 내 뜻을 받아주셨다. 다만 교회 목사님이 심방 오시면 따뜻하게 인사하고 반갑게 맞아 달라고 하셨다.      


엄마의 이 부탁은 정말 잘 들어줬다. 목사님이 심방 오시는 날이면 생일상을 차리듯 한 상 가득 잡수실 걸 준비해 놓고 헌금 봉투도 엄마 성경책에 끼워놓았다. 이런 나는 절을 좋아한다. 딱히 정해 놓은 절집은 없다. 허위허위 산길을 오르고 싶을 때 깊은 산에 묻힌 절을 찾거나, 망망대해에 발원하고 싶으면 바닷가 절집을 찾는다. 내가 절에 간다고 짐을 싸면 엄마 몸에서 실안개 같은 걱정이 빠져나와 내 몸에 젖어들었다.  

엄마가 세상을 뜨시고 나서 부치지 않은 편지 한 통이 내게로 왔다. 한지에 종서(縱書)로 쓰신 편지를 책 갈피에서 발견하고는 실안개에 편지를 쓰셨네 하면서 웃었다. 교회를 다니지는 않지만 구구절절한 엄마의 기도는 이미 내 살빛이 되었다. 엄마의 편지는 묘한 힘이 있다.  

내가 열등감과 결핍에 매몰되어 허우적거릴 때 나 스스로 열등감과 결핍의 문제를 해석하여 좋은 방도를 찾게 만든다. 나는 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초파일 특집을 하고, 그리스도가 강림하신 날에는 성탄 특집을 한다. 그리고 때때로 종묘제례악을 소재로 삼을 때는 공자님도 소환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복(福)도 많다.  



여담을 보태고 싶다. 울 엄마는 책에 낙서를 너무 많이 하셨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떠오르면 읽고 있는 책에 끄적거려 성이 가셨다. 제발 빌려 온 책이니 낙서하지 말고 눈으로만 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으셨다. 그래서 돌려주지 못하고 배상한 책이 여럿이다.

살아계실 때는 이 문제를 놓고 싫은 소리를 참 많이 했는데 이게 또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책을 펼쳐 볼 때 문득문득 조우(遭遇)하는 엄마의 낙서는 아련한 실안개. 오늘 창밖 실안개와 엄마 실안개가 만나 나를 강물에 띄운다. 애써 노를 젓지 않아도 둥실 뜨는 '노루 궁둥이 버섯' 같은 내 몸. 살 것 같다. 절친이 보내 준 버섯 사진을 이래서 내가 좋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용할 양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