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 없이 얻는 성과?
모성애는 바로 생기지 않았다.
아기가 거꾸로 있어 제왕절개술을 할 수밖에 없었고, 출산을 계획한 당일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아기를 만날 수 있었다. 배를 가르고 나온 아이는 그간 초음파 상에서도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기에 매우 낯설었다.
'네가 내 아이니?'
아이 얼굴을 보고 의료진에게 나는 할 일을 다 했으니 빨리 마취로 재워달라고 재촉했다.
입원병실로 돌아와 남편에게 우리 아기를 어떻게 보았는지 첫 감상을 물었다.
남편도 나와 같은 울보인지라 그에게서라도 내가 못 느낀 어떠한 따뜻한 감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을 기대했다.
"눈물이 나왔어?"
남편 역시 아무런 감상이 없었다고 했다.
드라마에서처럼 우리도 부부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펑펑 흘리는 그런 장면을 당연하게 기대했는데, 우리는 둘 다 울지 않았다.
우리 아기의 첫인상이 못생겨서였을까.
자연분만으로 몇 시간 동안 고생을 하면서 아이를 만난 게 아니라 수술에 의해 자판기처럼 만났던 그 과정이 쉬워서였을까. 어마어마한 일을 겪은 우리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뿐, 부모의 마음을 아직 몰랐다.
이제 세상에 나온 우리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참조: 우리는 기다리던 아이를 정말 어렵게 만났다.
■모성애는 본능인가? 학습인가?
모성애가 선천적인 본능인지, 후천적인 학습인지에 대한 논의는 많으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모성과 부성은 모두 본능보다는 학습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많았다.
모성이 본능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임신기간을 통해 태동을 느끼고 뱃속에서 아기가 자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므로 아기에 대한 애착을 아빠보다 더 먼저 형성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이런 애착이 형성된 상태에서 출산을 하게 되고 모유의 형성으로 주된 양육자는 엄마가 되는 것이 아기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가장 합리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성도 부성도 학습이며, 아기와 교류하고 상호작용하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부모-자녀관계에 적응하며, 엄마, 아빠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다.
어쨌든 글을 쓰고 찾아본 문헌들을 통해 아기와의 첫 대면에서 모성 본능이 약했던 내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나보았다.
'아가야. 우리는 널 필연적으로 사랑하고,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