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냐, 복직이냐.
어렸을 적에 둘 중 하나 유치한 선택의 질문을 뱉고 서운해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걔야? 나야?" (동성친구 사이)
"그 남자야? 나야?" (이성친구 사이)
"일이야? 나야?" (일과 겨루기)
"떡볶이야? 나야?" (농담이지만 진담일 때도)
굉장히 우습지만, 지난날에는 어렸던 여자친구들 사이에사 알 수 없는 질투심에 자주 나오는 레퍼토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거짓말을 할 것을. 매번 쓸데없는 질문에 심각하게 고민했을까.
짬짜면처럼 물론 둘 다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순간엔 정말 '일이냐, 사랑이냐.'를 선택하는 순간이 오곤 한다. 결혼생활 중에 부부사이의 사소한 순간에도 오고, 아이를 양육하는 중요한 순간에도 온다.
여기서 사소하고 중요하다는 가르마는 상대에게 절대적으로 내가 더 필요한 상태로 구분했다.
나는 지금 육아휴직(이후 퇴직)과 회사 복귀로 거의 일 년째 고민하고 있다.
"요즘에 누가 출산 직전까지 회사를 다니냐?"
그게 바로 나였다. 끝까지 다녀야 회사에서 내 할 도리를 다 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후에 돌아오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물론 출산 육아의 경험이 없기에 복귀에 대해 반신반의하긴 했다.
지난 일 년간 나는 출산 후에 일을 할 것인지, 육아를 할 것인지 고민했다.
고민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에서 미안한 마음으로 바뀌어 길게 늘어졌다.
이 선택이 어렵게도 마음이 바뀌는 상황도 생겼다. 출산을 하고 이십여 일 동안은 빨리 바깥으로 나가고 싶었는데, 삼십여 일이 지나면서 아이와 24시간 붙어있다 보니 지금은 내 자식 얼굴만 쳐다보고 있어도 행복하다.
회사를 다니면 아기는 누가 맡아줄지에 대한 고민도 복잡했고,육아를 하게 되면 내 커리어와 반토막이 나는 수입원에 대한 고민도 복잡했다.
답답하게도 결정이 안나는 일생의 심각한 고민이다.
예전처럼 ‘일이냐, 사랑이냐.'에서 끝날 단순한 질문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