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멈춰버렸던 지옥 같았던 1시간
둘째를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던 어느날.
영하 10도를 넘나들던 추운 겨울 어느 날.
산후 조리사를 고용하고 몸조리에 열중하던 날이었다.
나는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고 둘째 아이를 자연 출산을 시도했다. 첫째 아이를 낳으면서 출산 후유증이 심했기 때문. 그래서 이번에는 더 산후조리를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조리원을 갈까 생각했지만 예상보다 큰 비용 부담에 몸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기로 했던 것.
무엇보다 첫째 아이가 동생이라는 존재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갑자기 엄마가 동생과 사라지면 충격을 받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면서 육아를 도와 줄 5년 차 베테랑 산후조리 도우미이모님을 섭외했다.
나는 끝내 몸살감기에 걸렸다. 산후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침대에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내 상태를 확인한 이모님은 흔쾌히 본인이 첫째 등원을 하겠다고 하셨다. 첫째 아이가 가족이 아닌 타인의 손을 잡고 등원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뛰면 30초, 걸어도 넉넉히 1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었고 가는 길도 복잡하지 않은 ㄱ 모양의 위치에 있었다. 또 첫째 아이는 11개월 때부터 어린이집을 다녔기 때문에 혼자서도 곧잘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다.
나는 출입문으로 마중나가면서 이모님께 어린이집 가리키며 알려드렸고, 나는 1분이면 도착할 어린이집에 극성스럽게 전화를 해서 창문으로 나와 아이를 봐달라 요청드렸다. 아이도 이모님과 정이 들어 경계심이 없이 이모님! 이모님! 하며 잘 따랐기 때문에, 나에게 손을 흔들며, "엄마, 다녀올게." 하며 집을 나섰다. 마음이 놓였다. 나는 아파트 복도 창문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는 이모님과 첫째 아이를 확인하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5분이 지나고 나서는 마트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 오시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아직 안 왔어요. 밖에 안 보여요." "네?? 안 왔다고요? 안 보인다고요?" 가슴이 철렁하며 불안했다. 그때 마침 남편은 해외로 출장을 떠난 상태여서 지금 남편에게 연락을 한다 해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나 혼자 이 상황을 해결해야겠구나...뭘 해야하지?
둘째를 살폈다. 갑자기 둘째 아이는 배가 고픈지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침착해. 침착해.' 스스로 혼잣말을 하며 외투를 입었다. 그리고 그녀의 짐을 찾았다. 그녀의 짐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가방을 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핸드폰을 두고 나갔다. 지갑도 있었다. 그리고 입고 왔던 외출복도 가지런히 놓여 있는 상태였다.
'그래, 핸드폰을 가져가지 않았어... 나간 지 10분밖에 지나지 않았어."
영하 15도 안팎에 날씨에 폐렴 초기인 둘째를 들고뛸 수는 없었다. 일단 아기를 침대에 가둬놓고 우는 아이를 뒤로한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린이집으로 달렸다. 첫째 아이가 집을 나선 지 15분이 지났다.
나는 1분만에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초인종을 누르며, '제발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다고 해줘....' 마음속으로 빌었다. 하지만 원장님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직도 아이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제야 원장 선생님의 눈빛은 사태 파악을 했다. 선생님은 주변에 있는 다른 어린이집을 돌아다니며 아이를 찾아보겠다고 했다.
불길한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 날 아침에 밥을 안 먹겠다며 요구르트만 2개를 먹겠다고 한 아이에게 짜증을 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럭다가 문득 친정 엄마가 해 준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 변호사 부부가 어렵게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를 키워줄 프리미엄 산후도우미를 고용해 5년 넘게 가족같이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 사라졌다고,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고 지금도 찾지 못하고 지내고 있다고. 산후도우미 인신매매가 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이를 인신매매하는 영화도 떠올랐다. 무섭고 끔찍했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목이 터지도록 아이를 이름을 부르며 뛰어다녔다. 칼같은 겨울바람에 목에서는 벌써 피 맛이 났다. 그러게 20분이 지났다.
'유지나....베베야..'
나의 고성은 아파트 단지 내에 울려 퍼졌고 밖에 나와 안면이 있던 아이 엄마들과 운동하던 할머니들이 원장 선생님께 삼삼오오 모여들어 그녀와 아이의 신상정보를 공유했다.
'할머니는 70살 정도 되고 키가 크고 모자를 썼고.... 아이는 4살이고 빨간 외투를 입었대...' 그러자 할머니들은 빨리 아파트 단지 내 방송을 하자고 했다. 일이 이렇게 커지자 나는 더 불안해졌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한 애기엄마가 나를 보고는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유진 엄마..' 하는데 정말 다리가 풀리고 미칠 것 같았다. 울부짖으며 뛰어다녔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1시간이 지났다. 혼이 빠졌다.
' 유진 엄마! 유진이 여기 있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 앞에 이모님과 아이가 보였다.
적잖이 당황한 듯한 이모님과 날 보고 터져 나오고 있는 눈물을 참고 있는 아이가 눈에 보였다.
'엄마...................... 으앙.......'
아이를 찾았다. 아이를 찾았다. 나는 눈물을 닦았고 울음을 꼭 참았다.
아이한테 묻고 싶었다. '넌 왜 2년을 매일같이 다닌 어린이집을 찾지 못했냐고....' 다시 생각하니 결국 내가 바보였다. 아직 세 돌도 안된 아이에게 만난 지 1주일밖에 안 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가보라고 했다.
내가 아이를 진정시키고 있을 때 주위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이모님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사람들은 이모님을 일을 크게 만든 '나쁜 사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모님께 화를 낼 수는 없었다. 70대였던 그녀. 자신이 산후조리사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가족에게 숨기며 일하는 그녀였다.
집에서 혼자 울부짖고 있을 둘째가 번뜩 떠올랐다. 첫째를 안심시키고 아이의 손을 잡아 원장 선생님께 전달하고 이모님에게 살짝 속없는 미소를 지으며 얼른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그녀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나는 집으로 뛰었다.
둘째의 고성으로 가득 찬 집.
똥을 푸짐하게 싼 뒤 침대에서 얼마나 바둥 거렸는지 양말도 다 벗겨지고 아이를 감싼 이불이 다 풀어져 있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마음을 가다듬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기저귀를 갈았다.
이모님은 '애기 엄마..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라고 했다. '괜찮아요. 제 실수예요. 제가 정확히 어린이집 위치를 알려드려야 했어요. 많이 헤매지 않아 다행이에요.' 라며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나중에 들은 이모님의 말은 아이가 바로 눈에 보이는 어린이집이 아니라고 했다고 하며 방향을 바꿨다고 했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가서 후문으로 내려갔다고 한다. 이모님은 아이가 가는 길이 맞겠지..라는 생각으로 아이의 손에 이끌려 어린이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30여분을 그렇게 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어린이집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아이가 내 세상에 없던 1시간은 지옥이었다. 생지옥을 경험했다.
둘째가 태어난 후 내 마음은 더없이 버겁고 힘들었다. 3살 짜리아이에게 갑작스런 자립심과 독립심 훈련을 시작했다. '넌 이제 동생도 있는 언니가 되었으니 스스로 어린이집도 찾아가 보라'는 시험을 내준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아이에게 미션을 부여한 것이었다.
아이에게도 충분히, 아주 아주 충분히 독립심을 가질 시간을 주자. 그게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자. 아직은 엄마의 손길이 더많이 필요한 아이를 시험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더없이 소중한 아이. 이제 내 인생을 지옥과 천당으로 만들 존재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진짜 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