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쉼표가 나의 멈춤이 되지 않기를
'엄마, 나 이번 방학에는 학원 다니고 싶지 않아. 저번 방학처럼 아침부터 내내 태권도 학원에서 있다가 오후에 다른 학원으로 가는 거 싫어'
초등 방학은 워킹맘에게 속수무책의 시기다. 지난 여름방학에는 감사하게도 태권도장 여름방학 돌봄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간신히 사무실을
나갈 수 있었다. 매일 아침 태권도 학원차가 아이를 데려가 오전 운동 후 점심을 먹여주고 2시에 본 수업을 하고 난 후, 다음 학원으로 데려다주었다.
한국의 태권도장의 역할은 어디까지 인가. 그렇게 무사히 2학년 여름방학을 보냈다.
이번 겨울방학도 한번 더 태권도장 찬스를 쓰려했다. 그런데 아이는 태권도장에서 아침부터 오랜 시간 머무는 게 지루하다며 이번 방학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 맞지. 지루하겠지'
그래 알았어. 이번 방학은 엄마랑 같이 있자.
아. 무려 2달이 넘는 방학 동안 일을 못할 수도 있다니.아직 초등 2학년이다. 혼자 집에서 밥을 챙겨 먹을 수가 있나, 집에 혼자 있다가 학원시간에 맞춰 스케줄 관리를 할 수 있나..그래도 고학년은 되어야 학원을 보내고 일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최근 방에서 혼자 놀거나 친구와 노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꾸 혼자 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가
모든 걸 혼자 결정하도록 내려버둘 수는 없다. 자율성을 주더라도 위험한 것과 시청하면 안 되는 유투브 채널, 친구와 해도 되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줘야 한다.
’ 내가 일을 할 수 없다면 너에게 내 에너지를 다 써야겠어!‘ 그동안 배운 학원 책들을 모두 복습하고 한자 공부도 좀 하고 책도 100권을 목표로 가보자. 엄마랑 매일매일 해보는 거야!
방학스케줄표 대로 진행된 일주일 후, 아이는 이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악몽을 꾸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이게 맞는 건가. 화를 내보기도 하고 부탁도 해보며 억지로 끌고 갔다.
아이는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두 번 만나 한두 시간 놀더니, 점점 친구와 만나는 횟수와 노는 시간이 늘어나고 정기적인 놀이 스케줄이 생겼다. 한주는 우리 집에서 다음 주는 너희 집에서. 점심은 한 번은 편의점에서 다음 한 번은 집밥으로.
그래 때려치워라. 맘껏 놀아라.
친구와 노는 방법, 다투고 화해하는 방법. 친구와 약속을 정해 만나고 헤어지기. 친구네 집에 가서 놀기. 친구와 편의점에 가기. 그런 상황에서 맞닺뜨리는 다양한 상황에서 선택하고 결정하기.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만나기
이 모든 것은 학교도 학원도 부모도 가르쳐 줄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아이는 방학을 통해 사회와 사람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는 문제집도 있고 선생님도 있지만, 인간관계는 부딪치고 겪어보지 않으면 익숙해질 수 없다.
나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도록 기다려줄게. 어디 한번 친구와 재미나게 놀아보렴. 공부는 다음에 제대로 해보자. 내 시간을 너에게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