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도록 먹었던 병원 간식
최근 밤양갱이라는 노래가 인기라 한다. 그래서인지 밤양갱이 마트 계산대 옆 매대에 쌓여 진열되어 있었다. 앞에 서 있는 중년 여성 쇼핑카트에도 밤양갱 한 팩이 담겨 있는 걸 보았다. 그걸 본 남편이 물었다.
"우리도 양갱 하나 살까?"
"한 개도 아니고 8개 세트를? 그래.. 그러지 뭐."
밤양갱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보니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엄마는 신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새벽 도매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엄마는 어느 날부터 몸이 붓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찰흙을 누르는 것처럼 꾹 들어갔다가 천천히 올라왔다. 얼굴도 손도 발도 퉁퉁 부었다. 그렇게 엄마는 신장병으로 판정받고 대학병원에 입원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입원을 했고 조직검사 및 신장 투석 및 신장 이식을 준비했었다.
신장병 환자들의 식단은 맛이 없다. 소금이 거의 첨가되지 않은 무(無) 맛의 식단이다. 전주가 고향인 엄마에게 식사 시간은 매우 힘든 일과였을 것이다. ‘고구마순 김치에 고추장과 참기름 넣어 비벼먹고 싶다’ 고 자주 이야기했다. 그런데 양갱이 간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신장병 환자들에게 양갱은 유일하게 허용된 달달한 디저트였다.
그날부터 나는 학교가 끝나고 병원으로 갈 때마다 병원마트에서 양갱을 사서 병실로 올라갔다. 아빠도 양갱을 사서 왔고, 자주 오는 손님들도 양갱을 사서 왔다. 병실 냉장고에 양갱이 아주 많이 쟁여져 있었다. 나와 엄마는 병원에 있는 동안 양갱을 꽤 많이 먹었다. 그리고 엄마가 퇴원하고 나서는 양갱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남편과 아이들이 양갱을 먹겠다고 했다. 맛있을 것 같지 않아 나는 괜찮다고 거절했다. 엄마가 먹을 때 옆에서 같이 먹던 맛이어서 그저 달기만 하겠지 싶었다.
여덟 살인 둘째 아이가 양갱을 한입 먹더니 너무 맛있다며 혼자 한 개를 다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렇게 맛있었나’ 싶어 나도 한입 베어 물었다.
‘맛있네.’
쫀득하고 달달하다. 맞아. 그때도 이런 맛이었어. 병실 냉장고에서 꺼내 먹었던 맛이다. 그때도 이렇게 맛있었는데.. 학교가 끝나고 엄마를 보러 가며 손에 쥐었던 양갱. 병원에서의 고단한 시간 중 유일한 디저트였던 양갱의 기억이 다시 새롭게 태어난 하루였다.
밤양갱 노래 가사 끝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유일하게 허용되었던 밤양갱
밤양갱하나면 살짝 기분이 좋아지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