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리에 사라지는 것과 새롭게 생겨난 것들
이대역에서부터 신촌기차역까지는 중심으로 천천히 걸으며 시장 조사를 시작했다. 거주하고 있는 익숙한 거리를 시장 조사하려고 하니 갑자기 낯선 느낌도 들었다.
이화여대 앞에 <골든 라인>이라고 불리는 이대역에서 이화여자대학교 정문까지의 도로. 현재 점포 임대를 써붙인 매장이 10군데가 넘는다. 다양한 브랜드 매장들이 휩쓸고 간 이 곳은 화장품 매장들, 헤어숍, 커피전문점이 간신히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거리 중간에 위치한 스타벅스 1호점이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수호 매장 같다고나 할까.
큰길의 중간중간 골목길에 들어서면 중, 고등학생들이 옷을 사러 왔던 패션 거리. 중고등학생들은 시장표 옷을 사고 떡볶이를 먹으러 이 골목에 들렀다. 만원이면 예쁜 티셔츠를 살 수 있는 보세 옷가게들, 신발가게는 한산하다. 시장 조사 중 만났던 한 매장 주인은 이대상권은 더 이상 중, 고등학생들이 찾는 거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터넷에서도 살 수 있는 특색 없는 고만고만한 제품들이 비싸게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실제 팀원과 함께 중고등학생들에게 유명한 치즈밥 가게를 들러보았다. 가게 안에는 학생들의 포스트잇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인테리어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지만, 학생들이 부담하기에는 비싼듯한 가격, 가격에 비해 음식의 맛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학생들이 부담 없이 들리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최근 이대역 주변에는 대단지 아파트와 주거형 오피스텔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분양 중인 오피스텔의 1층에는 상가형 작은 매장들이 줄줄이 입점해 있다. 편의점 및 세탁소, 꽃집, 도시락 가게가 대부분이다. 공급과잉인데 반해 임대료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분양은 어느 정도 된 걸까? 이 많은 오피스텔에 사람들이 모두 입주하면 이 골목길은 예전처럼 다시 활기를 되찾을까?
이화여대 정문 옆 화장품 브랜드 매장 사잇길로 들어서면 배꽃 그림의 길이 나타난다.
난 이 골목길이 좋았다. 외국인 체험상품을 만들어 관광객을 데리고 오면 모두가 이 길을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지금 이 길은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 이슈, 이화여대의 1학기 온라인 개강 결정으로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매장들은 점포를 비우기 시작했다. 운영 중인 매장 옆 -> 점포 임대-> 운영 중인 매장 옆 -> 점포 임대가 과한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부터 2019년도까지 서대문구에서는 이 골목길에 많은 실험을 했다. 청년몰을 열고, 건물주들과 협상 끝에 임대료를 일정 기간 동결했다. 하지만 결국 청년몰은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매장을 정리했다.
마라탕을 팔던 식당도, 옷가게도, 디자인이 독특했던 청년 매장도, 분위기가 따뜻했던 문학다방도 모두 문을 닫았다.
하지만 희망도 보였다.
5월 말에 문을 닫기로 한 독립서점에 들어 사장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골목에 대한 추억, 애정이 있지만 떠날 수밖에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한 책을 한 권 구매했다.
독립 서점에 들른 적이 있는가? 독립서점에서 책을 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나의 포근했던 아현동'이라는 우리 동네 이야기가 가득 담긴 책을 구매했고,
그날 다 읽었다. 그리고 작가에게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락을 했고, 그녀는 나를 반가워하며 작은 선물과 편지를 보내주기로 했다.
이화 52번가 골목은 아기자기한 각기 다른 느낌의 가게들이 모여 꽉 찬 느낌을 주는 골목이었다.
혼자와도 부담 없는 소녀 방앗간, 고풍스러운 수선집, 독립 책방, 샐러드 가게, 떡볶이집 등.
'인생이 참 꽃 같네'라는 외관의 피자집도 있다. 지금은 이 길이 너무 휑하다.
이 길에 새로운 식구들이 눈에 보였다.
비건 베이커리 카페가 눈에 보였다. 간판도 없는 깔끔한 외관.
'비건'이라는 트렌디한 콘텐츠를 잘 담았을까?
그리고 요구르트 가게도 들어왔다. 부디 이곳에서 꿈을 펼치시길.
골목길에 위치한 독특한 가게가 사람을 끌면 그 골목은 살아난다. 하지만 살아난 골목길을 지키기 위해서는 골목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건물주, 임대인 그리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모두 골목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 주어야 한다. 다 같이 이 골목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길을 살리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는 수요조사를 시작했다. 카페, 꽃집, 서점 등에서 관심을 가져주었다. 이제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겠다.
어떤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