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래블메이커 May 22. 2020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발견한 순간   

낯선 곳으로의 여행.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

 21살. 힘들게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대학생활은 재미가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곧잘 따르던 착한 딸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 끈 떨어진 퍼펫 인형처럼 삶의 방향성을 잃은 것 같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부모님은 동대문 새벽시장에서 30년 넘게 의류 도매를 하셨고,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원단 더미와 의류 샘플들을 매일 보고 자랐다. 그래서인지 나는 섬유에 관심이 많아서 이와 관련된 전공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당신의 직업에 대해 항상 "이 일은 즐겁지도 좋지도 않아. 살기 위해서 밤낮이 바뀐 생활을 버티는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인지 부모님한테 이런 나의 꿈과 관심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꺼렸다.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내가 당신이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엠티, 단체 미팅, 축제도 즐기지 못했다. 그저 부모님이 선택한 나의 전공을 무사히 패스하고 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을까라는 조바심이 들었다. 그렇게 여유 없는 대학생활이 반쯤 지나갈 때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혼자 떠난 태국 시골마을


대학교 3학년 때쯤 (무려.. 13년 전;;;) 태국 시골마을로 자원봉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실 기회라고 하기보다 아무도 가지 않아서 신청자를 기다리는 해외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있었다. 80만 원 정도면 태국 지방 마을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20일 정도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비행기 값도 포함이었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인데 무턱대고 자원했다.


일은 다 저질러 놓았는데 부모님이 절대 보내주실 것 같지 않았다. 부모님께는 대학생들이 단체로 가는 해외 자원봉사 프로그램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 공항으로 떠났다. 비행기를 3번 정도 경유하고 방콕 스완나품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혼자 공항에서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며 쪽잠을 자기도 했다.  모든 게 신기했다.


방콕에 도착해서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4시간을 달려 뿌라쭈압 키리리칸이라는 지방 도시에 도착했다. 도시 안에서도 한 마을로 향했는데 그나마 깔끔한 가정집으로 배정되었다. 그 마을에 외국인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말도 안 통하는 모르는 사람과 20일을 함께 살 생각을 하니 그 가족도 나도 어색했다. 도착한 첫날, 전봇대 확성기를 통해 '한 한국인 여자가 마을 학교에 자원봉사하기 위해 마을에서 방문했다'는 소식이 소개되었다. 내가 살게 된 집의 가족과는 손짓과 발짓, 그리고 여행 태국어로 소통했다. 그 집의 아버지는 어부였는데 매일 아침 그가 해산물을 잡아왔고, 그것으로 아침식사가 제공되었다. 나는 해산물을 먹지 않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한국에서는 내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는 국제전화를 하기 위해서 전화카드를 구입했는데 이 마을에서 전화를 하려면 15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전화부스가 있는 마을 입구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연락이 되지 않자, 나를 마을과 연결한 단체를 통해 뿌라쭈압키리리칸 도시로 연락해서 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부모님은 딸이 혼자서 태국의 듣도 보도 못한 지방으로 여행 간 사실을 알게 되셨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일주일에 3번은 꼭 전화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나서야 부모님은 나를 놓아주셨다.      


 뿌라쭈압 키리리칸에서의 하루는 굉장히 느리고 매일매일이 여유로웠다. 규칙적인 일과라고 한다면 일주일에 3번 정도 마을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 주말에는 예쁘게 단장하고 마을 절에 가는 것. 주말에는 마을 아이들과 함께 마을을 여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들의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여행하다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15일 동안 나는 "진짜 여행"을 했다. 진짜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서 특별한 것 없이 지냈다. 평범한 현지 가족의 일상을 함께 보낸 것이 전부였다.


 15일 뒤 시골을 떠나 수도 방콕으로 이동했다. 올라오자마자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카오산로드의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으며 시골에서 손으로 먹던 현지 식사를 생각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한잔 마셨고, 대형 쇼핑몰도 구경했다. 관광객들을 위한 깔끔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으며 그곳을 방문한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네덜란드와 미국에서 온 그들은 방콕의 맛집과 멋진 관광지 그리고 태국만의 독특한 클럽을 추천해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태국 시골에서 도대체 무엇을 했냐고 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의사가 오늘 마을. 15분을 자전거를 타고 나가야 공중전화박스가 있는 마을에서 현지인과 함께 살았으며 마을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는 조건으로 숙식을 제공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태국 사람들처럼 월요일마다 노란 티셔츠를 입고 생활했고 주말에는 마을 안에 있는 박쥐 동굴을 가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갓 잡은 해산물로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그 외에 많은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고 함께 여행을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나는 그들과 2박 3일 동안 함께 여행하며 서로가 겪은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나는 이 이후에도 다양한 나라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경험을 했지만 이때의 태국 여행보다 더 인생에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한 적이 없다. 현지인과 밀접하게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간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을 방문한 사람들은 어떤 경험을 할까? 사람들은 어떤 곳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느낄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에는 어렴풋이 문화와 관광에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은 끝까지 당신이 딸이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지만 나는 졸업을 하자마자 관광업계로 취업을 준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인생의 첫 강연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