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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메이커 Feb 07. 2022

강진, (2) 비 오는 날 월출사에 가서 녹차를 마셔요

외로운 탑을 조우하고, 정약용 선생을 위로하던 녹차 한잔을 마시며


월출산 쪽으로 향하다 외로운 탑 하나를 만났다. 아침 안개가 자욱해 신비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외로이 폐사지인 월남사 터를 지키는 탑. 마음이 평온해졌다.   




(4) 아침에 월출사지터에서 탑을 마주하기


눈앞에 펼쳐진 장면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멍을 때려본다.  정리된 폐사지에 홀로 우뚝 솟아있는 돌탑.  뒤에 안갯속에 월출산.


옛날 옛적에는 이곳의 절이 있었다. 저 뒤의 산과 이 안개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였을텐데... 지금까지 탑 주변의 월남사지를 파헤치며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기와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이 탑은 그 모든 변화를 보아 왔겠지. 아침에 오기 잘했다. 참 고요하고 아늑하다.



월출산 중턱쯤 도착하니, 온통 초록빛이다.  넓이가 족히 10 평은  보였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보이는 초록빛 대지의 기운에 숨이 막힐 듯했다. ㈜태평양에서 관리하고 있는 오설록 강진 다원이다.



제주도와 보성의 차밭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누군가 관리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없다. 조용하기 그지없다. 차밭의 끝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한적하고 고요하다. 녹색 차밭을 양옆에 끼고 걸으며 찻잎이 내뿜는 공기를 마음껏 들이켠다. 그러다 이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마을 주민을 만나 다원을 추천받았다.




(5)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feat. 차에 진심인 자)을 위로하던 차 한잔을 마시며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정약용 선생의 호인 다산은 강진에서 차를 마시며 머물던 때에 붙여졌다. 정약용 선생은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 기간을 보냈다. 차나무가 많은 이곳에서 머물며 그는 자신의 호를 다산(茶山)이라 정했다. 기나긴 유배 기간 동안 그를 위로한 것은 '차'였다. 또한 정약용 선생과 오랫동안 함께 차를 나눠마셨다던 막내 제자 이시헌 선생.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찻집은 제자의 후손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200년 전 다산이 유배지에서의 유일한 낙이었던 티타임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이쯤 되면 이곳 차 맛이 몹시 궁금해질 수밖에. 우리나라 최초의 녹차 상표<백운옥판차>를 마셨다. '백운동에서 옥판봉을 보며 나누던 차'라는 뜻이다. 대나무 밭에서 야생차를 채취해 만드는 백운옥판차는 일반 녹차보다 좀 더 구수하고 부드러웠다. 맑고 고소하고 깊다. 어떻게 더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차를 마시며 다원 안을 둘러보니 엽전 같은 것이 매달려 있다. 떡차다. 덩어리 차라고도 불린다.



찻잎을 떡처럼 찧어서 동전처럼 만들어 매달아 해와 바람을 맞게 했다. 떡차. 정약용 선생이 강진을 떠나 타지에 있을 때 이 떡차를 자기에게 보내라고 썼던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막내 제자였던 이시헌 선생은 매년 이 떡차를 만들어 정약용 선생님께 떡차 셔틀(?)을 하셨다고. 그리고 정약용 선생님은 떡차를 받고 나서 답장으로 차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해 나는 사뭇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참.

아까 백운옥판차가 '백운동에서 옥판봉을 보며 나누던 차'라고 했었지.. 백운동으로 가자.





(6) 차 마니아가 백운옥판차를 마셨던 사치스러운 정원으로


차밭 한 귀퉁이에 있는 빽빽한 대나무 숲을 지나니, 조선 시대에 지어진 백운동 원림이 나타났다. 여기가 백운동이구나! 백운동 원림은 완도 부용동 정원과 담양 소쇄원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으로 꼽힌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월출산을 병풍 삼아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뭔가 소박하면서도 사치스럽다.




그렇게 나는 백운옥판차를 마시다가 백운동으로 가서 옥판봉도 보았고, 정약용에서 떡차 셔틀을 했던 막내 제자 이시헌 선생도 만났다.



정약용 선생은 유배 중에 잠시 이곳에 머물며 이곳 풍경에 반해 12편의 시를 지었다. 이 정도면.. 조선시대 래퍼 아닌가? 한 장소에서 그에 관한 12편의 시를 지을 수 있을 걸까. 이곳의 12경 중 그가 뽑은 제일의 풍경은 원림 안에 있는 정자에서 바라본 옥판봉 바위 능선이다. 직접 와서 보기를.


나는 이제 어디로 향할까?


녹차 중독자 정약용 선생을 만나러 간다. 다산 초당에는 그가 차를 만들고, 물을 찾기 위해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천과 차를 끓였던 돌, 반석인 다조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가자. 다산초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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