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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07. 2021

09 사랑하기 좋은 날

/ 산타클로스의 우울

터키의 주교였던 ‘성 니콜라스(Saint Nicholas, 270~343년)’는 매우 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터키의 작은 마을 '파타라'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현재의 지명 '데므레'라는 지역에서 신부 생활을 하였다. 부자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고 한다. 선행을 자주 하여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그는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는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성 니콜라스의 행위를 그네들의 생활 안으로 끌어들이는데 시작은 네덜란드였다. 성 니콜라스는 네덜란드식 발음으로 신트 클라우스(Sint Klaus)인데 네덜란드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식 발음인 산타클로스로 변형되었다.

'성 니콜라스' 초상화

북유럽 핀란드의 도시 ‘로바니에미’가 산타클로스의 마을로 탄생한 것은 의외로 전쟁과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핀란드는 독일과 한편 이었는데, ‘로바니에미’에 독일군 기지가 세워지자 소련은 맹렬한 침공을 감행하게 된다. 이를 ‘소련-핀란드 전쟁’ 또는 ‘겨울전쟁’이라 부른다. 이 전쟁으로 도시의 90%가 사라지게 된다.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산타클로스 도시’가 탄생하게 되었다.


산타클로스긴 수염과 사슴(‘오딘’은 말을 이용)을 타고 선물을 주는 모습은 북유럽 신화의 ‘오딘’과 흡사하며 특유의 빨간색 복장은 ‘코카콜*’의 홍보로 각인된 것이다. 3세기 후반의 인물인 ‘성 니콜라스’는 1,700년이 지난 후 오늘날  이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의 외모는 많이 변했을지 모르나 착한 이에게 베풂을 실천한다는 선행의 뜻은 그대로 지속되고 있는 듯하다.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는 종교적 의미를 벗어나 하나의 축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는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도심 번화가는 젊은 남녀로 가득 차고 모든 술집과 숙박업소는 일 년 중 가장 대목을 맞이하기도 한다. 마치 그 날이 인생의 마지막 인 냥 모든 것을 퍼 붇는다. 그러한 세태는 해가 더할수록 심해지고 예전처럼 가족 모두가 모여 조촐한 식사를 한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 되어 버렸다.


며칠 후면 밸런타인데이다.

로마의 황제 '클라디우스 2세'는 전쟁에 동원되는 청년들을 모으기 위해 금혼령을 내리게 된다(결혼한 남성은 징집에서 제외되었기 때문). 사제 밸런타인은 이에 반기를 들고 연인들의 혼인을 집전하게 되는데 결국 발각되어 2월 14일 처형당하게 된다.

밸런타인데이는 이를 기억하기 위해 선물이나 초콜릿을 주는 것으로 주로 영국 등 유럽지역에서 기념하였지만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 업자가 본격적으로 초콜릿 판매에 활용하면서 지금과 같이 대중화되었다.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연휴나 기념일이 상업적인 마케팅에 휘둘려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모든 것이 남녀 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즉흥적이며 흥미 본위의 것에 치중하고 있다. 연말연시, 봄꽃 축제, 5월 초의 연휴, 여름휴가, 명절 연휴, 크리스마스 등 일 년 내내 둘 만의 사랑을 즐길 명분을 준다. 사랑의 시각이 좁혀진 것이다. 감정의 스펙트럼도 단순해지고 말았다. 연민이 필요한 이들은 더 안 보이는 쪽으로 사라졌다. 아니 우리는 보지 않으려 하는지 모른다.


밸런타인 주교는 이런 뜻으로 연인들의 사랑을 이어 주진 않았을 것이다. 산타클로스몹시 바빠졌다. 챙겨야 할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산타클로스의 몫이 되었다. 외로운 이는 산타클로스의 선물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마음은 빈약해지고 있다. 신체는 달콤할지 모르나 감정은 메말라지는 시대가 되어간 것이다.

산타클로스에게 너무 과중한 업무를 맡기지 않으면 좋겠다. 흰 수염이 없어도 배가 안 나와도 굳이 빨간 털옷이 없어도 당신도 나도 산타클로스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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