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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05. 2021

08 참으면 행복할까?

/ 바오바브나무의 우울

인도양으로 둘러싸인 섬 마다가스카르. 인구 2천300만 명의 마다가스카르 공화국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수도는 '안타나나리보'로 줄여서 '타나'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마다가스카르까지는 20~24시간 꼬박 하루가 필요한데 바오바브나무 거리로 유명한 '모론다바'까지 갈려면 다시 '타나'에서 차로 12시간 정도 더 가야 한다. 바오바브나무를 보려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반나절이 걸리는 샘이다. 3만 6천 명이 사는 '모론다바'까지 그 오랜 시간을 거쳐 방문하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 일생에 한 번은 그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자 자신의 버킷리스트 안에 적어놓 이들일 것이다.

홀로 선 바오바브나무

바오바브(baobab)나무는 바오밥나무라고도 부른다. 열대 지방의 우기와 건기가 뚜렷한 곳에서 자라며 우기에 수분을 비축하고 건기에는 잎을 떨어뜨려 수분을 유지한다고 한다. 바오바브나무의 평균 수령은  2,000년 정도며 높이는 20m, 지름은 1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나무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이러한 바오바브나무를 신성시했으며 많은 토속 신화에도 등장한다.

최근에는 '생명의 나무'라는 칭호와 함께 화장품의 원료로 많이 쓰인다. 바오바브나무는 최대 12만 리터라는 어마한 양의 수분을 저장할 수 있으며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열매 또한 많은 영양소를 포함하고 있어서 예전부터 아프리카 주민의 식량으로도 쓰였었다.

 

'모론다바' 바오바브나무 거리의 수령은 보통 1,400년 이상이다. 오래된 것은 5,000년이 된 나무도 있다. 그들은 그 긴 시간 어떻게 버텨냈을까? 이 나무들의 씨앗은 인류 문명의 시작과 비슷한 시기에 뿌려졌다. 돌로써 칼을 만드고 나뭇잎으로 간신히 몸을 가린 선조들의 모습부터 비행기와 차로 그들을 보러 오는 지금의 인류까지 그들은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바오바브나무는 낮과 밤에 스스로 옷을 바꿔 입는다고 한다. 햇빛의 조화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변하지 않는 자리에서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수천 년의 생명을 지켜온 그 우직함은 충분히 경외감을 받을만한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움은 이러한 인내 덕에 싸인 풍경들 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멋짐에는 쓸쓸함도 묻어 나온다. 얼마 안 되는 초목들 사이로 우둑하니 서 있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고단함 또한 엿볼 수 있다.

석양과 바오바브나무들

아프리카인들은 바보 밥 나무에서 조상들의 영혼이 쉬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인지 늘 땔감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바보 밥 나무는 잘 보존되어왔다. 만일 바오바브나무를 해한다면 사자, 뱀, 악어 등 맹수들에게 공격받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신의 말에 참견이 심하고 말썽을 피우며 돌아다녀서 분노를 샀다는 바오바브나무. 그들은 거꾸로 선채 뿌리는 하늘로 머리는 땅 속에 묻고 평생을 살아가는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인간에게는 낭만과 전율을 선사할지 몰라도 자신들의 삶은 인내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출 때보다 핏빛의 황혼 녘 풍경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아마 온종일 태양이 지는 순간만을 기다렸을 그들에게 일몰은 하루를 마치는 선물과도 같지 않았을까.


참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뜻과 맞지 않거나 몸이 따르지 않음에도 어쩔 수 없이 좇아갈 때 우리는 참아야 한다. 내게는 이로운 행위더라도 타인에게 해가 된다면 이 또한 참아야 한다. 홀로 살아간다면 참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이다.

맹자(孟子)는 인간의 성품을 말할 때 불인지심(不忍之心)이라 하였다. '참지 못하고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성선설(性善說)을 말해온 맹자의 가르침으로 모름지기 위험에 처한 이를 본다면 당연히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참아야 할 때와 참지 말아야 할 때를 명확히 구분하여 행동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분별함에 있어

기다림도 필요하며 희생도 각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타인의 고통이 내겐 기쁨이 되는 경험을 심심치 않게 겪게 된다. 모두가 만족하는 행복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행복이 물질적 척도로 가늠되기 시작하면서 그 양도 한정되고 말았다. 한정된 물질에 행복이 종속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최근 정부에서는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고 있다. 이를 두고 말이 많다. 내게 오지 않는 혜택 그 자체보다는 내가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반대로 내가 그 혜택을 수혜자가 된다면 불만은 사라질 것이다.

1997년 IMF 시절 우리는 많은 가정의 붕괴를 보았다. 당시 한국은 집단 우울증에 걸려야만 했다. 모든 것이 부정되는 시절이었다. 누군가와의 연줄도 내세울 만한 능력과 학벌도 어찌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엄마 아빠는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각자의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그것만이 살길이었으리라.


만일 행복을 물질이 아닌 정신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그 양은 무한대로 늘어날 것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별 무리 없이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것을 아무리 퍼주어도 그 바닥은 보이지 않을 것이니.

바오바브나무는 1년에 고작 3㎜가 자란다고 한다. 그들은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서 인내하고 고통을 이겨내어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참는다는 것 그 자체에 큰 의미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만족스러운 삶일 것이다. 만족스러운 일상이 바로 행복과 연결되는 지름길이 아닌가 한다. 삶은 오늘에 그치지 않고 내일도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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