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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09. 2021

10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

/ 프리다 칼로의 경우


우울은 상실로 인하여 발생하게 된다. 어느 날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지고 홀로 된 느낌을 갖게 될 때 우울의 감정이 드러난다. 모든 것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하찮은 것으로만 여긴다. 주변의 것은 귀찮은 존재이며 내겐 어떤 의미도 줄 수 없게 된다.

프리다 칼로

그런 면에서 본다면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년)는 더 이상 잃게 없는 중증의 우울증 환자였어야 했다.

그녀는 유태계 독일인 아버지와 메스티소(스페인과 인디오 혼혈)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칼로는 6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제대로 걷지 못하였으나 멕시코 최고의 국립학교에 입학하여 의사의 꿈을 키우게 된다. 하지만 10대 후반 교통사고로 인하여 9개월간 입원하게 되고 그 기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인 그림에 심취되어 버린다. 입원 중에는 주로 자화상을 그렸는데 당시 혁명가이며 화가였던 리베라로부터 극찬을 받자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결심하게 된다.

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1944년

리베라와의 만남은 그녀에겐 행운이며 더 큰 불행이기도 했다. 이후 리베라는 그녀의 삶 모두를 지배해버린다. 마침내 22살의 칼로는 스물 살의 연상인 리베라와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결혼 후 선천적 자궁 기형으로 수차례 유산을 거듭했으며 남편 디에고 리베라의 여성 편력은 끊임이 없었다. 그에 대한 분노와 절망, 인내로 많은 상처를 입던 중 여동생과 리베라의 불륜은 되돌릴 수 없는 상실감을 주고 이혼을 결심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리베라를 놓아줄 수 없었던 그녀는 1년 후 재결합을 이루게 된다. 이후 고향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평온한 일생을 보내는가 했지만 건강 악화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어야만 했다. 죽기 전 몇 년 간은 휠체어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직감한 칼로는 그녀의 마지막 일기장에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라는 구절을 적고 1954년 생을 마감한다.

프리다 칼로 <부상당한 사슴>, 1946년

그녀의 인생은 상실의 연속이었다. 소아마비, 척추 수술, 남편의 바람, 다리 절단... 등. 신은 미술에 대한 천재적 재능 외 모든 것을 그녀에게서 빼앗었다.

 

그녀는 47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43점의 작품을 남기는데 그중 55점은 자화상이다. 그녀의 그림은 사적인 영역의 것들이 많다.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승화시켜 내면의 것을 표출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생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견디며 굳건한 삶을 견지해 왔던 그녀는 많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었으며 존경을 받아오고 있다.

현재 프리다 칼로의 모든 작품은 멕시코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정부의 허락 없이는 거래할 수 없다. 당연히 처음부터 그녀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은 건 아니었으리라. 작품 자체의 가치가 높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자 했던 그녀의 정신이 더 높이 평가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나의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우울을 극복하는 최선의 처방전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외로움과 힘듦을 타인과 공유하며 위로를 받고 현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 숨길수록 자신은 초라해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우울증과 조울증을 겪으며 그들의 예술을 대중에게 선보여 왔다. 나름대로 탈출구로써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다. 물론 일반의 대부분은 직접적인 예술 활동을 통해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나름대로의 방법은 찾아봐야 할 것이다. 가령 운동이나 등산 등 취미 활동을 통해 신체 활동을 늘려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상실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나만의 상실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타인의 삶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똑같이 타인이 나를 볼 때 나의 상실은 그저 그런 평범한 것에 그칠 수도 있다. 감정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 상실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잠시에 그쳐야만 한다. 잃어버린 것을 채울 수 있는 또 다른 감정을 찾아 메워야 한다. 구멍 난 그 자리를 오래 두면 우울이란 것이 차지할지도 모른다.


우울은 누구에게나 한 번씩은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마치 감기처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스스로가 인정하고 극복하고자 한다면 분명 이겨낼 수 있는 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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