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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13. 2021

14 우울증은 '우주 감기'같은 거야!

/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하루씨, 당신은 만화만 그려 생계는 내가 책임질 테니!”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의 남자 주인공 ‘미키오(사카이 마사토)’가 여주인공 ‘하루코(미야자키 아오이)’에게 프러포즈할 때 한 말이다.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평범한 회사원인 미키오와 다소 4차원적인 만화가 하루코 부부의 우울증 극복을 다룬 이 영화는 일러스트 만화가 ‘호소카와 텐텐’의 실화에 바탕을 두었으며 탄탄한 연기력의 두 배우의 조합으로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츠레(つれ)’는 한국어로 짝·동반자·남편을 뜻한다. 다소 긍정적인 측면만 강조한 것도 있긴 하지만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진지함이 담겨있는 영화이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던 츠레는 어느 날인가부터 식욕이 떨어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병원을 찾은 그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닌다. 하지만, 증세가 심해지자 아내 하루코의 집요한 설득으로 퇴사 후 집에서 쉬며 치료하게 된다.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은 만화가 하루코는 간신히 출판사에 연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지만, 어느 날 일에 집중하던 하루코는 잠시 츠레의 말을 무시하고 만다. 이에 소외감을 느낀 츠레는 화장실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코의 관심과 배려로 차츰 츠레의 우울증은 호전되게 되는데...라는 줄거리다.

츠레가 우울증에 걸린 것 말고는 특별한 사건이나 반전이 없는 영화다. 어찌 보면 밋밋한 영화일 수도 있다. 우울증은 이런 평범한 생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쌓여온 불안과 분노는 우리의 일상을 무너지게 한다. 

 

영화에서 우울증을 ‘우주 감기’라 표현했다. 누구나 감기에 걸려 고생하듯이 우울증 또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으며 몇 번의 고통을 감내하면 이겨낼 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완치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매년 또 다른 감기에 공격받듯이 우울증은 쉬지 않고 주변을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약할 것 같은 상대를 찾아 지속적인 패배감을 선사한다.


츠레는 아내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때 자살을 시도했다. 타인 특히 사랑하는 이에게 외면을 당할 때 충동적인 감정은 더 깊어진다. 주변인의 도움이 필요한 건 확실하다. 만일 도와줄 이마저 없다면 더 힘들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혼자 밥 먹고 잠자며 또 출근한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만날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나 가능하려나.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많이 외롭다. 경증의 우울증이라 스스로 판단하기도 한다. 잦은 존재감 하락으로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잠도 늘기 시작했다. 위안은 오로지 독서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영화에서 츠레가 말한 것처럼 ‘인생의 여름방학’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라고. 몇 번의 울음과 괴로움은 그냥 겪어야 하는 재채기 정도의 증상으로 생각하기로. 생각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몸은 가능한 바삐 움직이려 한다.

이 영화는 2011년 제작된 영화이다. 나는 일본 책을 수입하고 판매하는 일로 서점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즈음 일본 내에서도 우울증 관련 도서들이 꽤 출판된 걸로 기억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도서 판매 흐름이 비슷해서 ‘우울증’, ‘자존감’에 관련된 책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우울증 관련 에세이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어 이슈가 된 적도 있다. 


우울증은 사람이 있는 곳엔 시간과 공간을 무시하고 존재해 왔다. 모든 이에겐 우울의 싹이 숨어 있는 듯하다. 적어도 스스로가 그 싹을 키워서는 안 된다. 필요 없는 존재, 무능한 사람, 도움이 안 되는 구성원이라는 생각, 모두 그 싹을 키우는 빌미가 된다. 우울의 반은 본인의 생각에 따라 덜어 낼 수도 있다. 

‘새벽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비록 새벽하늘이 흐리더라도 밤하늘보다는 훨씬 밝은 법이다.’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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