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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12. 2021

13 조선시대에도 우울증은 있었을까?

/ 연암 박지원의 경우

조선 최악의 왕으로 손꼽히는 선조. 그는 영특한 머리를 가졌지만 훗날 자신의 평가를 두려워한 건지 질투심이 많았던 건지 당시 뛰어난 인물들을 활용하지 못한 채 조선 시대 중 가장 잔인한 시대를 만들었다. 그는 총 8명의 왕비와 후궁에게 14남 11녀를 두었다. 태종과 성종이 각각 12명의 여성을 맞이하였는데 선조가 그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자녀의 수도 태종이 29명, 성종 28명, 선조 25명으로 세 번째를 차지한다. 태종과 성종은 나름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 하더라도 선조는 나랏일보다 다른 일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선조는 서자 출신이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다음 보위는 적장자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정비인 의인왕후 박씨가 자식 없이 죽게 되자 후궁인 공빈 김씨의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게 된다.

공빈 김씨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광해군(1575~1641년)과 그의 친형인 임해군(1574~1609년)이다. 광해군이 선조에 이어 보위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임진왜란 시 그의 공적이 뚜렷했고 백성의 신임이 두터웠으며 당시 두 번째 왕비인 인목왕후 김씨의 첫째 영창대군의 나이가 불과 두 살밖에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첫째도 아닌 둘째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한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해군이 우울증을 앓아 정신이 산란하여 국정을 제대로 돌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사실 임해군이 실제로 우울증을 앓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악행으로 보아 그 이상의 정신 질환은 앓고 있었음은 확실해 보인다.


<열하일기>와 <허생전>을 지어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문장가 연암 박지원(1737~1805년)도 우울증 환자였다. 그는 당시 세도가인 노론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식견과 문장력으로 당대 많은 이들에게 부름을 받았기도 했다. 그의 존재를 의식해서인지 권력자 홍국영의 미움을 사 한 때는 지방에 숨어 후배 양성에만 힘쓴 적도 있다.

연암 박지원 초상화, 실학박물관 소장

그는 정치에 입문하기를 꺼려하여 과거시험 답안지에 엉뚱한 그림을 그리거나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웃사이더의 삶을 자처한 것이다. 연암은 당시 농경사회에서는 흔하지 않았던 우울증을 17~18살에 겪었다.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많은 이들과 대화를 하고 허름한 옷을 입고 저잣거리로 나서는 등 자신의 신분을 낮춰가면서까지 노력했다. 신분을 넘어 인간으로서 또 다른 인간과 섞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로 인해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만 했을지 모른다. 절대적 신념의 유교 사회에서 평등이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악(惡)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권력과 특권을 내려놓자 그의 침울함은 사라지게 되었다.

연암 박지원의 우울증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경험이었다. 주류 사회를 버리고 비주류를 택함으로써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과 섞이며 나름대로의 처방전을 완성해 갔을지 모른다.

 

용기를 낸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이루어지는 행위이다. 우울을 버리기 위해 연암은 몇 번이고 큰 결심을 하였을 것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하는 그의 실용주의는 자신뿐만 아니라 후기 조선 사회에 큰 활력을 넣어주었다.

스스로의 벽을 허무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의 원천은 욕망에 있다. 갖고 싶다는 욕망, 이기고 싶다는 욕망, 살고자 하는 욕망. 벽이 무너지면 알 수 없는 또 다른 공간이 생긴다. 다음이 두려워 벽을 깨지 못한다면 늘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서만 살아야 한다. 타인과도 늘 벽이 있기 마련이다. 일정한 벽 사이에 어색함은 항상 자리 잡고 있을 터이다. 자신 또한 벽을 치고 그들을 경계했을지 모른다. 어느새 그것에 익숙해져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대부분의 삶이다.

 

먼저 다가서는 것이 선빵이다. 우울에 카운터 펀치를 날리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선을 넘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되뇌며 선택해야 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를. 그렇지 않다면 당장 선을 넘어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삶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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