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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14. 2021

15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

/ 고흐의 경우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년). 그는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했을까?


그는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이지만 주로 남프랑스에서 활약했다. 네덜란드 시절에는 어둡고 탁한 색 위주의 그림을 그렸으나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주변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특유의 강렬한 색채를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생전에는 단 한 점만이 판매되었을 정도로 인정받지 못했다.


절친이었던 고갱과의 말다툼 후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르고 자화상을 그렸는데 이때부터 정신병이 더 악화되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게 된다.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 또한 1889년 정신병원 입원 중 그린 작품이다. 그는 1890년 권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쏜 후 이틀 후 사망하였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

고흐는 삶은 불행하였다. 고흐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로 고흐도 목사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실제로 고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전도사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고질적인 간질병과 괴팍한 성격으로 사람들과 쉽게 엮기지 못하였으며 평생 몇 번의 짝사랑은 있었지만 그를 사랑해 준 연인조차 만나지 못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1880년 이후라 하니 약 10년 정도의 짧은 화가 생활 끝에 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가 입원하였으며 그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그가 입원한 정신병원은 중세 수도원 건물을 개조한 곳으로 마치 감옥과 같은 곳이었다. 차가운 돌과 삭막한 공간으로 둘러싸인 단절된 세상이었을 것이다. 정신병원을 나온 후로도 고흐의 기행이 계속되자 마을 주민들은 그가 떠나 주길 간절히 원했다고도 한다.

고흐가 머물던 '아를'지역의 모습을 소재로 한 <밤의 카페테라스>

술과 정신질환으로 인해 고흐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졌으며 그의 곁에 남은 이는 동생 테오 반 고흐뿐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와 테오 반 고흐는 돈독한 우애를 가진 형제였다. 형을 너무도 사랑한 테오는 빈센트에게 화가의 꿈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생활비까지 보내주었다. 심지어 자신의 아들 이름을 형과 같은 빈센트 반 고흐로 지었다고 한다. 형 빈센트가 자살하자 동생 테오도 6개월 후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이는 형의 죽음을 애석해하다 그 또한 자살했다고 주장하지만 자살보다는 지독한 슬픔에 의한 마비성 치매가 원인이라 한다.


생전의 고흐는 그저 그런 시골 화가에 지나지 않았다. 고흐가 자살하자 그의 그림은 동생 테오의 소유가 되었는데 몇 개월 후 테오마저 죽자 고흐의 그림은 테오의 아내 요한나가 관리하게 된다. 요한나야말로 오늘날 고흐를 만든 장본인이다. 그녀는 고흐의 그림과 그의 형제들이 나눈 668편의 편지를 대중에게 알리며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고흐는 우울증을 벗어나고자 그림에 열중했을지 모른다. 동생 테오가 보내준 돈으로 물감과 캔버스를 사서 온 힘을 다해 창작에 매달렸다. 단절된 사회에 섞이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비록 그는 우울을 극복하진 못하였지만 긴 기간 저항하며 예술 활동을 지탱해 왔다. 그것에 대한 결과물로 위대한 그림을 남겨놓고 떠났다. 갖은 정신 질환으로 불행과 맞서며 힘든 삶을 살았던 빈센트 반 고흐. 강열한 빛깔로 채워진 그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암울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을 그의 고독을 상상하곤 한다. ‘슬픔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죽음으로 끝맺는 삶에 잠시나마 위로의 말을 건네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힘들었을 영혼에 미안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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