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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15. 2021

16. 철종은 철인왕후를 사랑했을까?

/ 철종의 경우

철종(이원범)은 조선 제25대 왕으로 재위 기간은 1849~1863년이다. 우리는 흔히 그를 '강화도령'이라 부르며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나약한 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요즘 철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덕분인지 철종에 대한 이미지에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사료를 보게 되면 철종이 그리 어리석은 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과거 시험장에서 직접 구술 문제를 내고 채점하였을 정도로 학문 실력이 출중하였다. 조선 후기 사상가 면암 최익현(1833~1906년)을 장원급제로 직접 뽑았다고 하니 꽤 안목도 있는 왕이었다.

복원된 철종의 어진

정조의 둘째 아들이자 조선 23대 왕인 순조(재위 1800~1834년) 때부터 시작한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는 헌종, 철종을 거치며 절정에 이른다. 사도세자의 죽음에 냉정했던 노론의 '벽파'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죽은 후 급격히 쇠퇴하게 되는데 반대파인 '시파'의 경우 순조의 왕비를 시작으로 헌종, 철종의 3대에 걸쳐 안동 김씨 가문이 중전에 앉게 된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속 순원왕후 - tvn 홈페이지 참조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언군으로 나중에 홍국영과 역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사사되고 나머지 식구는 강화도로 유배된다. 40여 년 후 풀려났으나 1844년 철종의 큰형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역모가 발각되어 또다시 유배되고 만다. 그 후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순원왕후는 이원범을 25대 왕으로 만든다. 안동 김씨 가문은 이원범을 만만한 인물이라 판단했다. 그의 나이 19세였다.


철종은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는데 그녀가 철인왕후(1851년)이다. 철인왕후는 왕비가 된 지 8년 만인 1858년 유일한 적장자 이융준을 낳았으나 생후 6개월 만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죽는다. 1863년 고종이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고 1878년 42세에 폐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드라마 속 철인왕후 - tvn 홈페이지 참조

사실 철종에게는 강화도 시절 미래를 약속한 여인이 있었다. '양순'이라는 천민 출신의 여인이다. 갑자기 왕이 되어 한양으로 온 힘없는 원범은 양순을 무척 보고 싶어 했다. 매일 밤 그리워하며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졌다. 물론 궁으로 데려오려고도 했으나 당시 왕족과 권력자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천민의 피가 섞이는 것은 그들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히는 일이라 절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근심을 없애고자 독약으로 그녀를 살해하고 만다.


양순의 죽음을 안 철종은 철저히 망가지고 만다. 술과 여자로 방탕한 생활을 보내고 정치와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철종은 철인왕후 말고도 7명의 여인을 더 두었다.

정치 상황에 대한 압박과 양순에 대한 슬픔이 우울증을 발병하게 했고, 후사를 얻기 위한 과도한 약재 음용은 육체를 망가트리기 충분했다. 결국 그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눈을 감게 된다.

드라마 '철인왕후'에서와 같이 철종과 철인왕후의 사랑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왕이 된 순간부터 잘 짜인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로 살아야 했다. 안동 김씨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을 것이다.

백성의 고단함을 직접 경험한 철종은 이러한 현실에 더욱 힘들어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하고자 해도 힘이 부족하여 제 뜻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훈련도감을 통해 궁궐 수비를 강화하려고 했고 삼정(전정, 군정, 환정)의 문란으로 발생한 농민 봉기에는 그 고을 관료들을 처벌하여 기강을 세우려고도 했다. 후에 삼정이정청을 설치하여 조세 개혁을 통해 백성의 안정을 꾀하려 하지만 지배층의 저항으로 결국 실패하고 만다.  


15세에 왕비가 된 철인왕후는 당시 조선 최고의 금수저였지만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여인이었다. 양순을 잊지 못하는 철종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고 집안과 남편 사이에선 늘 긴장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다행히 그녀는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고 말수가 적은 조신한 여인이었다.  

철종과 철인왕후, 둘 모두 명예는 얻었으나 불행한 생애였다. 만일 철종이 왕이 아닌 이원범으로 강화에 계속 살았다면 연인 양순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철인왕후 또한 권력가의 집안이 아닌 일반 양가의 규수로 태어났다면 나름 시대에 맞는 여인이 되어 모범적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기준의 척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데도 그 이유가 있다. 대체 평범은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일까?  우리는 의미 없이 '그럭저럭 잘 지내요'라는 말도 자주 쓴다. 대부분의 일상에는 고단함이 묻어있게 마련인데 '그럭저럭 잘 지낸다'라고 답한다. 지레짐작하는 것일까? 너도 나와 같이 어느 정도는 힘들 거야 라고. 그 짐작은 옳은 것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있으며 매일 새로운 고민이 더해진다. 문제는 해결할 고민이 누려야 할 행복을 넘어설 때 일어난다. 행복의 시간을 고민에게 점령당하면 일상은 사라지고 만다. 행복과 고민은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 넘치지 않는 행복은 타인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하고 적당한 고민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울은 적당한 고민을 넘어서는 일이다. 넘치는 물과 같이 포용할 수 없는 절망을 준다. 하지만 그 넘치는 물을 자신이 직접 따르고 있음 또한 알아야 한다. 그쳐야 할 때를 알지만 그치지 못하는 것은 아직 현실을 대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 일 수 있다. 시작은 작고 가벼운 것부터 하면 된다. 고민의 보따리를 하나씩 개봉하여 세상에 드러내야만 한다. 한정된 보따리 속을 고민으로만 채우면 행복은 들어갈 자리가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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