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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16. 2021

17. 정신 똑바로 차려!

/ 처칠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서는 대규모 연합군 철수 작전이 이루어진다. 이 작전에서 최소한의 병력을 희생하며 영국군 22만 6천 명과 연합군 11만 2천 명이 영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당시 영국군 원수 고트 경과 처칠의 판단으로 연합군은 재정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이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후일 영국인들은 전략적이고 침착했던 사령관보다 승리에 강한 집착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지도자 ‘처칠’에 대해 깊은 존경을 가지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된 이 작전은 영화로 제작되어 2017년 국내에 개봉되기도 했다.

영화 <덩케르크>의 포스터

‘윈스턴 처칠(1874~1965년)’은 독선적이고 때론 제국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차별, 쿠르드족 학살, 인도 벵골 대기근의 책임 등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영국 해군장관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 총리를 역임하였다. 정치인으로서의 그는 의외로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세계대전 종전 후 6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을 저술하였다. 어릴 적부터 글솜씨가 좋았던 처칠은 전쟁 당시의 긴박함을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이 책은 1946~1953년에 집필되었으며 총 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한 방대한 양의 자료와 교훈이 높게 평가받아 수상하게 되었다.

청년 시절의  '윈스턴 처칠'

처질의 집안은 대대로 귀족 가문이었다. 하지만 어릴 적 처칠은 낙제생에 문제아였다. 생활기록부에는 '품행이 나쁜 믿을 수 없는 학생이다. 의욕과 야심이 없으며 습관적으로 지각하며 자신의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라고 적혀있다. 그는 역사를 뺀 거의 모든 과목에 흥미가 없었으며 3수 끝에 간신히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인기 있던 보병과는 성적이 안돼 포기하고 수학이 필요 없는 기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150명 중 8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다.

그러던 중 1899년 보어전쟁에서 포로가 되어 탈출한 사건으로 전쟁 영웅으로 불리며 1900년 보수당 후보로 나서 하원의원에 당선된다. 이후 자유당으로 당적을 옮겨 정치적 기반을 다진다. 하원의원에 당선될 때 그의 나이는 불과 25살이었다. 이후 통상장관, 식민장관, 해군장관 등을 역임하며 영국사에 가장 위대한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는 선천적으로 우울증이 있었다. 얼마나 지독했는지 그는 발코니와 철로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는 충동적인 자살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 또한 우울증 완화를 위해서였다. 그는 자신의 우울증을 '블랙독(Black Dog)'이라 부르며 평생 힘들게 했지만 친구처럼 대하며 살아갔다.

  

안타깝게도 그의 아들 또한 유전된 우울증에 의해 알코올과 마약 중독으로 사망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은 그림 그리기였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천국에 가면 첫 백 만년 동안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고 까지 했을까. 그는 또한 자신의 우울증을 억제하는 것은 ‘이성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우울증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림 그리기에 열중인 '윈스턴 처칠'

우울증은 유전적이고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완치의 개념이 없으며 일생을 괴롭힌다. 처칠이 택한 우울의 극복 방법은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단단한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나름대로의 해소법을 찾는 것이었다.


회피하는 것은 굴복하는 것일 수 있다. 벗어날 수 없다면 내 안에 녹여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 벗어날 수 없음에 절망할 것이 아니라 억제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찾아야 한다. 덩케르크의 철수처럼 최악의 상황에서도 맞서 싸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울증은 길고 어려운 싸움이다. 깊은 밤 오지 않는 잠처럼 홀로 지새워야 한다. 나를 도와줄 이는 나 자신밖에 없다. 내가 나를 놓으면 나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침 녘 안개처럼 무의미한 삶을 이어갈 것이다. 평생 우울에 갇혀 산다면 나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다. 나에게 주어진 기쁨은 기꺼이 누려야 한다. 우울이 죄어온 크기만큼 기쁨을 즐겨야만 한다.

감정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일지 모른다. 이를 지탱해 줄 수 있는 무기는 이성뿐이다. 부디 이성의 끈만은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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