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피 Feb 18. 2021

19. 그냥 말해, 참으면 병 된다

/ 백진스키의 경우

그림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폴란드의 현대화가 '지슬라브 백진스키(Zdzislaw Beksinski, 1929~2005)'. 그는 그림에 상징을 부여하면 예술이 아닌 일러스트에 불과하다며 보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백진스키는 '작가의 의도를 제목으로 제한하게 되면 작품 해석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며 '하나의 상징으로 귀결된 작품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정답이 없는 이미지에 더 애착이 간다고도 했다. 특정되는 것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정형화된 것에 반대하며 개인의 감정과 상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그의 그림은 음산하며, 흐릿하지만 날카롭고, 고급스러우며 섬세하다. 유년 시절 제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비극을 겪은 그는 인간의 죽음과 신체를 소재로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색채와 필체 통해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건축학 전공자답게 짜임새 있는 독특한 구도를 가진 것 특징이다.


영화 에어리언의 캐릭터 설정을 맡았던 일러스트레이터 'H.R 기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화가로 백진스키를 첫손가락으로 꼽았으며 만화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루라켄타로' 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작품에서는 허탈함을 느낄 수 있다. 은은한 색채 안으로 영혼은 빨려 들어가고 땅 위에 남은 건 메마른 공간과 차가운 가시광선뿐이다. 더하여 무채색 위주의 바탕은 절망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재해체한 신체의 기괴함과 움푹 페인 해골의 안구에서는 공포마저 느끼게 한다. 신기한 건 그 공포감이 환상과 겹쳐져 미묘한 아름다움을 준다는 점이다. 

마치 '자크 데리다(1930~2004년)'의 해체론에 입각하여 모든 구조물을 해체한  창조적으로 재구성한 느낌을 주며, '조루주 바타유(1897~1962년)'의 암울하고 관능적 느낌마저 준다.


백진스키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상관없이 그가 살았던 그 시대 경험은 그러했을지 모른다.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에 따른 시대의 우울함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재밌는 것은 이러한 환시 미술의 선구자인 백진스키의 실제 모습은 배 나온 이웃집 아저씨처럼 극히 평범했다는 점이다. 성격 또한 쾌활하며 대화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림만으로 작가의 모습을 상상했다면 의외로 놀랄 수도 있다.  비록 그의 말년은 비참했지만.(아들의 자살, 본인은 친구의 아들 2명에게 17군데를 찔려 살해당함)


우울증의 화가, 죽음의 화가, 초현실주의 화가의 대가 지슬라브 백진스키. 사실 그는 유년시절의 참혹함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사람처럼 보인다. 타인에게 무언가의 메시지 감동을 주기 위함보다 자신만의 해석과 기교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전해주고 싶어 했을지 모른다.


우울한 사람은 고민이 많다. 슬픔도 많고, 외로움도 많다. 겉은 조용하지만 그의 내면은 누구보다 복잡하고 난해할 수도 있다.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연습을 조금씩 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 고민과 슬픔과 외로움을 밖으로 덜내야만 한다. 백진스키처럼 군가의 평가를 의식하지 말고 의지에 따른 행동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다. 

오래된 것은 썩기 마련이다. 생각도 그러하다. 감정을 묵혀두면 분노가 냄새를 풍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아왔다. 숨을 때마다 나는 더 작아지고 말 것이다.

일상에 절대적 모범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과 다른 나를 보며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18. 사랑은 핸드폰과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