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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피 Feb 23. 2021

21. 딸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 '내 탓'에 우울해하지 말자

70km 정도면 지금 시대에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이다. 하지만 직장이 그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출퇴근에 어려움이 있다. 춘천에 있는 회사에 취직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딸과 떨어져 살게 되었다. 주말이 되면 식사 한 끼 하는 것이 그나마 딸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확실한 건 같이 산 17년 동안 난 너무  부족한 아빠였다는 사실이다. 늘 일과 술이 먼저였다. 꿀 같던 내 딸의 어릴 적 추억이 너무 적다. 너무 귀엽고 예뻤던 그때의 딸의 모습이 영원할 거라 착각한 바보 같은 아빠였다. 딸은 벌써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다.

다행히 카톡은 서먹한 나와 딸을 이어준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직접 말하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엔 무리가 있던 우리 부녀에게 카톡은 부담 없이 일상을 물어볼 수 있는 수단이었다.

춘천에서 일한 지 8개월 정도 되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카톡을 통해 물었다. 급식은 잘 나왔냐, 동네 카페에서 공부는 잘 되냐, 유튜브 적당이 봐라 등 자질구레한 잔소리를 해댔다. 예전과 같이 한참 후인 2시간 정도 지나 답장이 왔다. '아빠, 내일 학교 오래. 담쌤이 보재' 순간 당황했다. 웬만한 일이라면 애엄마를 부를 텐데 굳이 나까지 찾은 이유가 뭘까? 큰 사고라도 친 걸까? 나쁜 생각부터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딸은 정말 모범생이었다. 집 안에서와는 다르게 학교 에서는 친구들의 인정을 받는 고민 상담사역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공부도 상위권이었다. 중학교 입학 후 매 학년 1학기는 무조건 학급 회장을 도맡았다. 그때가 고1이었으니 총 4번을 했다. 선생님에게도 믿음이 두터워 딸에게 친구들의 문제를 자주 물어보곤 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면담이라니!

'왜, 무슨 일 있어?'

'.....'

'엄마가 아니고 아빠야?'

'나, 학교 그만두려고'

.....

'엄마한텐 말했어?'

'응'


한참을 생각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와이프의 생각이 듣고 싶어 연락했다. 나에게 맡긴다는 뜻을 비췄다. 여느 엄마들 같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의외로 차분했다. 마치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알았다'는 간단한 통화 후 꼴딱 밤을 새웠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 자퇴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반고인 지금의 학교에서 의과대 진학은 어려우니 공부해서 정시로 도전하겠단다. '공부하기 위해 자퇴한다' 참,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나의 반론의 근거가 약했다. 우리나라 입시나 학교 제도는 둘째치고 학교 생활만의 추억이 있는데 나중에 후회할 거라는 말이 방어의 전부였다.

딸은 많은 준비를 혼자 했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3개월 이상을 고민했다고 했다. 자퇴 후 학교에 알려지고 많은 친구들이 연락해오자 카톡마저 탈퇴했다. 그나마 그런 행동에 그래도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구나 하고 조금의 위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안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딸은 2018년 11월 자퇴 후 1년 동안을 놀았다. 딱 한 달만 놀고 본격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1년을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너무 답답했지만 꾹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2015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사업 한다고 홀로 서면서부터 모든 일상이 틀어져버렸다. 하루하루 생활비가 걱정되었고 그나마 갖고 있던 작은 아파트도 팔아야 했으며 카드값도 제 때에 못내 정지되기 일쑤였다. 딸에겐 제대로 된 옷은커녕 신발 하나 맘 편히 사줄 수 없었다.

학교를 그만 다닌다고 할 때, 딸의 문제가 아닌 내 문제가 그 이유인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20년 동안 힘들게 쌓았던 경력과 명예가 사라지는 것은 둘째치딸의 사춘기를 메마르게 한 아빠가 되고 말았다.

모든 탓이 나로 말미암아 벌어졌다는 자책감과 딸 하나 책임지지 못하는 무능한 아빠가 돼버린 현실에 자괴감도 들었다. 더욱이 딸과 떨어져 홀로 지냈기에 이러한 감정은 증폭되어 일상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종일 잠만 잤고 다른 어떤 밤은 뜬 눈으로 지새웠으며 모든 일이 귀찮고 의미 없게 생각되었다. 햇빛 든 카페 창가에 앉아 종일 2~3권의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기쁨이었다.

1년 만에 책을 든 딸은 대입검정을 마치고 학점제 학교를 다니며 학사 편입을 준비 중이다. 계획대로만 되면 또래보다 1년 빨리 대학 3학년이 된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딸이 어느 정도 안정된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준 엄마에 고마울 따름이다.


3개월 전인가 딸과 삼겹살을 먹다 말했었다. 네가 학교 그만둔다 할 때 아빠는 무척 괴로웠다고. 다 아빠가 부족해서 네가 삐딱하게 나가는 것 같아 힘들었다고. 하지만 딸의 대답은 확실했다.

'아빠가, 왜?'

'돈이 없으면 불편해,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그만둔 건 아니야. 그때 그 마음은 진짜였으니까'

'아빠, 나 공부할 때까지만 등록금만 잘 벌어줘'

'그래...'

무덤 더미 말하는 틈으로 '쓸데없는 걱정 했어'라는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부모는 자식에 무한 책임을 갖고 있다. 그들의 잘못은 부모의 탓이며 그들의 성공은 그들의 노력 덕분이라 여긴다. 나를 대신할 수 있는 세상 유일의 존재는 자식밖에 없다고 여긴다. 때문에 부모는 늘 약자일 수밖에 없다.  '나의 탓'으로 귀결되는 현실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자식에 대한 '내 탓'은 본능과도 같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이 일상으로 확장되면 걷잡을 수 없이 우울에 빠져버리고 만다. 종교적 측면의 '내 탓'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의미이지만  추측에 따른 '내 탓'이라는 감정은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습관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지만 모든 일에 나를 옥죄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스스로 가치 없는 삶을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아빠 때문이 아니야'를 말해준 딸에게는 고맙지만, 지나친 죄책감에 수년간 힘들어 한 그때에 나에겐 너무나 미안하다. 그래서 '내 탓'이 늘어날수록 나는 더 상처 입게 된다. 가끔은 '남 탓'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떳떳해질 수 있다.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딸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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